집으로 돌아온지 10일이 지났을 즈음 입원실이 비었으니 빨리 올라오라는 전갈이 왔다. 우린 새삼 30%의 확률을 떠 올리며 착잡한 맘으로 짐을 꾸렸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이를 위해 집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어 두었다. 어쩔수 없는 모성본능이 이미 눈물 가득 고이게 했으나 그런 마음을 조금도 의식 못하는 아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꼭 껴안고서 89년 4월 1일, 아이와 함께 입원하였다. 아이의 수술 날짜가 잡히자 난 초조한 맘을 더욱 가눌길이 없었다.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수술 며칠전, 우린 뜻밖에 반가운 손님을 맞았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우리 아이에겐 새 생명을, 우리에겐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보낸 사람이리라. 그 분은 다름아닌 메리놀회 신부님으로 아이의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던 것이다.
그 신부님과 남편은 신부님께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실때에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훗날 안 일이지만 남편은 30% 성공률에 기대를 걸지 못하여 천주교를 통해 미국으로 아이를 보내 보다 확실하게 수술을 받을 계획으로 연락을 통하던 중에 이 신부님과도 연락이 닿았던 모양으로, 마침 신부님께서 한국을 방문케되자 그날 병원까지 찾아 오셨던 것이다. 신부님은 자신을「배신부」라고 소개하셨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남편이 갑자기 아이를 세례시킬 수 없느냐고 물었다. 신부님께선 부모가 비신자이면 세례가 불가능하지만 이런 경우는 특별하기 때문에 대세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 아이는 낯선 외국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본명은 「안젤라」.
신부님께서 아이의 잠든 모습을 지켜 보시더니 『천사같은 얼굴』이라 하시며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안젤라의 대모는 같은 심장병으로 입원해 있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안젤라로 다시 태어난 아이는 수술 스케줄이 변경되어 1주일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주일에 병원강당에서 집전되던 미사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때의 내 맘은 참으로 묘했다. 아이가 세례를 받고 난후부터 불안하고 초조하던 맘이 사라지고, 한없이 편안해지며, 30%하던 확률은 남의 이야기 같게만 느껴졌다. 내 마음속엔 이미 하느님으로 꽉 차 있었고 난 그분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리고 때맞춰 세례를 받게 해 주신 하느님께선 안젤라를 결코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런 연유로 난 그때부터 웃을수가 있었고 편한 맘으로 병원생활도 할 수있었다.
안젤라는 1주일을 더 기다린 4월 13일 촛점없는 시선을 허공으로 둔 채 싸늘한 침대위에 놓여져 나의 시선에서 멀어져 갔다. 수술실이란 글자가 붙어있던 방으로 사라진뒤, 돌아서는 내 시야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으나 난 쉬이 지워버릴 수가 있었다.
『하느님께서 꼭 지켜주실텐데 뭘…』
수술은 6시간이란 긴 공간을 둔 후에야 끝이 났다. 보호자대기실에서 수술중인 환자 명단에서 안젤라의 이름이 지워지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 6시간은, 내 생애 가장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으리라. 수술이 끝나고, 집도하신 선생님께 대기실에 들러 나를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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