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나 건네는 인사는 단순하다. 우리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일상적인 인사말이다. 스승이 치른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제자들은 평화가 자신들의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는 부활한 예수의 인사가 제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갖 혼란과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그들에게 평화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는 아니었다. 박해와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낼 방법을 찾지 못해 다락방에 모여 숨어 있었던 그들에게 건네는 평화의 인사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열매이다.
2017년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400조7000억 원이다. 그중에서 전력운영비가 28조1377억 원이고, 방위력 개선비(무기체계획득, 무기체계개발을 위한 군비 증강비용)가 12조1970억 원으로 국방예산은 40조3347억 원이다. 2010년에서 2015년까지 5년간의 통계를 보면 매년 7%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남북대치와 이념논쟁은 끊임없는 전력 증대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현재에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맞선 한반도의 평화 구축이라는 구실로 종말단계고고도영역방어(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는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일부를 성주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설치하기 위한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헌정 이래 첫 대통령 파면에 따른 제19대 대통령선거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사드배치를 완료하기 위해 강제집행과 설치가 한미합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군사력의 위협에 대항하여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쟁무기와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현혹하며 군비 증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대치 현실은 이념으로 재무장되어 남북의 체제와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군사력 강화와 무기체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기 축적에 남과 북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무기가 쌓이는 만큼 군사력이 증대되고 무력을 통하여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설치되는 무기체계 때문에 이미 평화로운 농촌의 삶과 일상이 깨져버린 국민들의 고통을 보면 무엇이 참 평화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음을 가톨릭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라는 미명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군비 증강은 당장 전쟁이라도 일어날 기세로 몰아간다. 군비 증강은 국가 간의 분쟁을 유발하거나 확산시키는 원인이 된다. 인간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며 폭력과 무력으로 자신의 탐욕을 위해 살상을 가하는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전쟁과 폭력, 무력과 군사력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이론은 폭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자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평화시에는 군대가 없는 나라들을 보면 반드시 군사력이 자국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국제법상을 휴전으로 남북이 대치중인 나라임이 분명하다. 휴전으로 분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촉즉발의 전쟁 가능성이 있다고 선전하며 군비증강을 정당화하고 전쟁준비를 당연시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것은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아니다. 문을 잠그고 다락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전해진 부활의 평화는 용서와 화해, 공존과 연대의 용기를 주는 선물이다. 십자가와 죽음을 무력과 군사력으로 물리치고 싶은 유혹을 넘어서는 화해와 용서로 만들어지는 평화가 부활의 참 평화임을 가슴에 새겨야 할 오늘의 한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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