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의는 이렇게 입어야 하고, 포도주와 물병은 이렇게 들고 사제 앞에 나아가야 하고요, 종을 칠 때에는 힘을 들이지 말고 이렇게 살짝 쳐야 합니다.”
전례분과장이 일일이 가르쳐 주지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순서를 익히는데 진땀이 나기도 한 복사연습. 두어 번 연습을 하고, 드디어 지난 1월 마지막 금요일 오전 미사 시간, 마침 겨울방학을 맞아 본당에 온 신학생과 함께 제의실에서 성전으로 나섰다.
머리 하얀 영감이 복사로 입당하는 것을 본 신자들이 말은 안하지만, 다들 좀 놀라는 듯 바라보는 모습이 느껴지자 긴장으로 가슴이 벌렁벌렁 거렸다. 그러나 숨을 크게 들이쉬고선 ‘그래, 난 잘 해낼 거야’ 하고 가슴을 펴고 늠름히 복사에 임했다.
우리 본당에선 저녁미사에 학생과 젊은이들이 복사를 하는데, 낮미사에는 등교하고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복사 없이 신부님 홀로 미사를 집전해 오셨다. 그러다가 지난가을, 노인들 신심단체인 요셉회에 신부님이 오셔서 이제 낮미사에 요셉회 어르신들이 복사를 좀 서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전례분과장이 유인물로 복사에 대한 해설과 순서를 가르쳐 주었고, 직접 제대에 가서 실습도 하게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해보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허리가 아파서, 다리 관절이 안 좋아서…, 핑계를 대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 보니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낼모레면 팔순이 되는 늙은이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제대 옆 주님 곁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겠는가? 늙은이를 필요로 하는 것도 분명 주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큰 은총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망설임 없이 선뜻 나섰고, 매주 낮미사를 봉헌하는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만사 제쳐놓고 일찍 성당에 나가 복사에 나서고 있다.
사실 젊어서는 복사할 기회도 없이 평일미사에 참례하는 데만 마음을 썼는데 노인이 된 지금 뒤늦은 은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정말 주님께서 주시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제대 옆에 꿇어서 성체를 향해 종을 칠 때, 그 벅찬 느낌과 감동은 직접 복사를 서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선물이다.
“할배 복사, 파이팅!”
장승재(야고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