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1월 이베리아반도는 아랍에 의한 700년 강점에서 해방되자 바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같은 해 8월 인디아로 항해하기 위해 콜럼버스를 함장으로 하는 성모마리아호를 파견한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땅을 끝까지 인도로 믿었다. 하지만 그 땅은 인도가 아니라 동양계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신대륙이었다. 이에 질세라 포르투갈은 5년 후에 콜럼버스와는 반대 방향으로 인도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바스쿠다가마를 파견한다.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대항해의 시작은 인류에게 또 다른 역사 즉 세계화를 열어주었지만 식민주의라는 커다란 아픔을 낳게 됐다. 결국 대항해시대의 초기경쟁에서 포르투갈이 이겼다. 해외에서 약탈하거나 싸게 구입한 온갖 물질들로 수도 리스본은 사치와 화려에 취해 흥청망청 대는 도시로 타락했다. 해외식민지의 크기는 넓어져만 갔고 원주민 집단학살의 만행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제조법을 전수받아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상당수가 가톨릭신자였던 왜병사령관들 옆에서는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조선도 포르투갈의 간접피해국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의 진노는 불가해한 방식으로 인간들에게 전달되는 법이다. 리스본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1755년의 일이었다. 부당한 부귀영화는 한꺼번에 파괴됐고 하릴없이 사라져갔다. 세계의 패권은 스페인에게 넘어갔다. 하늘은 재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포르투갈은 세계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고의 부국은 유럽 최저의 빈국으로 하강했다. 하지만 그 고통이 거름이 돼 정신적으로 영글기 시작했다. 천박한 화려함의 도시 리스본은 가난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변신하게 됐다.
서두름 없던 용서와 구원의 상징으로 결국 포르투갈은 성모가 발현하는 은총을 받기에 이른다. 1917년 5월 13일 소박한 농촌마을 파티마에서였다. 3명의 아동들에게 성모님은 자신의 존재를 어렵게 드러내셨고, 3개의 예언을 들려줬다. 예지의 내용은 화해와 일치 그리고 세계평화에 관한 것들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의 예언 덕에 암살을 모면하기도 했다. 파티마는 세계적인 천주교성지가 됐다. 해마다 5월 13일이면 수많은 신자들이 순례를 온다.
이번 100주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친히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오셨다. 필자도 평화나눔연구소의 벗들과 함께 이번에 파티마를 방문하는 영광을 안았다. 우리나라도 요즘 좋은 기적이 싹트고 있다. 한반도에 성모 마리아님의 자애로운 눈길이 드리운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은총이 위대해도 그것을 담아낼 그릇이 미약하면 헛될 수 있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치열하게 회개하자. 그것만이 하늘이 주시는 파티마의 또 다른 영성을 우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파티마의 100주년은 바로 우리의 것이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