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국회의원 총선의 열기가 한창 뜨겁게 전국을 휩쓸고 있을 때, 온갖 잡음과 탈법, 불법사례가 연일 보도되고 있을 때, 양식있는 국민들은 정녕 『국회의원이 뭐길래?』라는 냉소적인 비아냥을 흘리기도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을 대표해서 국정에 나서는 국회의원들이야말로 의회정치의 꽃이요 민의의 대변자로서 실은 대단한 명예요 자랑스런 영광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언제 어느 때고 왼쪽 양복깃에 자랑스런 황금배지를 착용하고 내노라 하는 것을 크게 돋보이려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보통사람이 아닌 모든 보통사람 가운데서 뽑힌 선량이므로 당연히 보통사람과는 다른 표식을 해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같이 금배지 패용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아닐까.
중고등학생들이 교복과 교모를 단정히 입고 쓰고 다니던 옛날엔, 학교배지를 행여 달지 않았다면, 상급생 규율부나 훈육주임 선생님에게 들키는 날에는 기합을 받아야 했던 기억을 지닌 세대들에겐, 의원들의 금배지 착용이 크게 이상스럽게는 여겨지지 않겠지만, 요즘의 젊은세대들에게는 모범적인 배지 패용이 때로는 이상하게 보일런지도 모른다.
흡사 남북고위급회담장에 나타나는 북쪽 인사들이 하나같이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나오는 것이 어딘가 끌끄럽게 여겨지듯이 말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한사람 빠짐없이 패용하는 금배지가 의원임을 나타내는 표식 정도로만 인식되면 다행인데, 만인중에 선택된 자임을 과시하는 도구로, 다시말해 특수한 신분을 과시하며 흡사 전제군주 휘하의 귀족 같은 권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 속마음이 눈꼽만큼이라도 밑자리에 깔려 있다면, 이는 정말 시급히 버려야 할 전시대적 유물이 아닐 수 없다.
민의의 대변자로 모든 보통사람들의 심부름꾼으로서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 한몸을 바치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시종일관 지닌 의원이라면, 금배지 패용이 심부름꾼이라는 표식으로 생각할 것이요. 결국 자랑스럽다거나 특권을 지닌 특수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징표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진정 전자와 같은 순수성으로 꼬박꼬박 배지를 다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속담에 『뒷간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와서 다르다』는 말이 있지만, 선거기간 동안의 모습과 당선뒤 배지를 달았을 때의 모습이 어쩌면 뒷간속담의 깊은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데, 어떻게든 금배지를 달아야겠다는 집념에서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않고 동분서주하던 후보자일수록 남기는 뒷맛이 뒷간속담을 생각하게 해서 씁씁해지는 것이다.
어쨌든 값으로 치면 겨우 1개에 1만원 남짓하는 금도금배지인데, 이것을, 꼭 달아보겠다고 돈을 물쓰듯이 뿌리고 그것도 모자라 상대후보의 구린데를 찾아 있는말 없는말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알량한 후보자와, 이런 수법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은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도 언제 쯤이면 선진민주국가의 선량의 모습을 볼수 있을것인가 하는 암담한 심정이 된다.
그런가하면, 우리사회에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꼭 나타내보여야 하거나, 자랑스럽게 말해도 좋을 사람들이 어떤 연유에선지 자기를 스스로 숨기려 하고 꽁무니를 감추어 보호막 속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다른 우울함을 느끼게 한다.
국민학교 시절, 어쩌다 백점을 받았을 때, 시험지를 가방속에 넣지도 않고 손에 든채로 집으로 달려와 어른들에게 자랑스레 펼쳐보이며 칭찬을 들으려했던 기억을 누구든 지니고 있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 기쁜일은 자기만 알고 있기엔 좀이 쑤셔서 어떻게든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은, 비단 철없는 어린이들 뿐이랴! 누구든 똑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된 우리 크리스찬들-하느님을 알고 하느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과연 우리는 부끄러운 사람들인가, 아니면 자랑스러운 사람들인가?
천신만고 끝에 금배지를 달고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양복깃에 금배지를 자랑하는 선량들처럼, 이마에 성호를 그으며 손가락에 묵주반지를 끼고 우리도 자랑스레 크리스찬임을 나타내 보일 수는 없을까? 아니면 남들 앞에선 성호도 긋지않고 가장 보통사람인것 처럼 시치미를 떼고 먼눈을 살필것인가?
철없는 어린이가 백점짜리 시험지를 치켜들고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와 엄마한테 큰소리로 외치듯, 나는 자랑스러운 크리스찬이라고 이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금배지를 패용한 국회의원에겐 온갖 특전이 부여되고 기백만원의 세비가 매월 지급되며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때문에 국회의원임을 애써 나타내 보이려 하겠지만, 크리스찬은 특권도 없고 돈도 생기지 않고 존경도 받지못하니까 애써 나타내 보일 건덕지가 없다는 말일까?
한국평신도협의회는「내탓이오」 운동을 벌이면서「십자성호긋기」「찬미예서 인사하기」등의 덕목을 만들어 모든 신자들이 생활화 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또한 전국의 천주교회에서는 전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어떻게 전교할 것인가? 어떻게 신자생활을 올바르게 할 것인가? 우리는 다르게 할 것인가? 우리는 다시한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주변을 살펴보자, 나는 과연 자랑스러운 크리스찬임을 크게 내세울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기를 쓰고 금배지를 달려고 하듯이 신자가 되겠다고 십자성호를 긋는 방법을 물으며 찾아들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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