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소재, 프라도형제집에서 살게 되었다. 형제들과 함께 살림을 차린 것이다. 살림은 말 그대로 「살리는 일」이다.
우리들은 자녀를 낳고 가족을 돌보는 살림은 아니지만 서로에게 영신적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시켜 나갈 책임을 지고 있다. 그리하여 가장이신 주님의 빛으로 윤나고 주님의 향기를 풍겨 이 지역 사람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쁜소식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맨 처음 공동체가 시작할 때, 수상한 사람들로 오인받아 신고당하기도 했는데, 특히 천주교 사제가 성당이 아닌 가정집에 산다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동사무소직원, 가게주인 등 모두 그렇다. 한번은 우편물을 건네주는 집배원이 신부님이냐고 묻고는 왜 신부가 여기 사느냐? 성당에선 신부가 부족해 난리라는데…』한다.
신자들의 시각도 이분들과 별 차이는 없다. 『신부님 어디 계십니까?』 일반적인 질문이지만 신경쓰이게 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설명을 하지만, 또 다시 어느 본당을 맡고 있느냐? 그럼 언제 본당을 맡게 되느냐? 궁금증이 끝이 없다.
얼마전 종로성당사제관에 기거할 때였다. 근처 금세공노동자들이 성당의 화장실을 늘 이용했다. 그런 관계로 쉽게 그들과 친해졌는데, 대화중에 내가 사제인 줄 알면서도 호칭을 뭐라 할까요. 형님, 아저씨…, 형님이 좋겠지요. 형님이 하는 일이 무슨 일입니까? 보수는? 몇시간 일합니까? 이건물 형님 것입니까? 그럼 얼마에 세들어 살고 있나요? 비록 사제에겐 생소하고 엉뚱하게 들리지만 그의 질문은 자기 삶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음을 알수 있다. 집이 없어 여기저기 전전해야하고 좀더 나은 경제적인 여건마련을 위해 고심해야 하는 그들이다. 그들과 교회의 간격을 실감나게 하는 단적인 예이다.
이처럼 무관심한 사람에게 「와서보라」는 설득력이 없다.
「찾아가서」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는 화장실을 맘씨 좋게 내주는 곳, 그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 관심의 대상은 교회를 찾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가야한다. 세상 깊은 곳에 현존하는 교회, 그 표지로서 우리는 가야한다. 행당동 산동네에 살림을 차린 연유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