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옛말이 있다. 인간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법이 그 인간의 생명과 삶을 지키지 못해온데서 연유한 말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속에서 주먹이 먼저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래도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다행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이. 뚜렷한 이유도 모른채. 각종 폭력에 시달리는 것이 요즈음 우리의 형편이다.
법이 없는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행위를 법이라는 테두리속에서 제한을 두고있는 이 제도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때부터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물론 명문화되고 성숙된 오늘의 법. 그 역사는 훨씬 짧지만 인간과 더불어 변하고 발전되어온 법은 인간생명이 존재하는 날까지 함께할 동반자임에 틀림없다.
법의 기본정신은 평등한 적용에 있다. 인간은 법앞에서 마땅히 평등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삼권이 분리되어 있는 것도 법의 공정한 적용과 집행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달된 국가라 할지라도 법적용이 완벽하다고 장담할수 없다. 하물며 민주주의가 미처 뿌리를 내리지못한 국가에서야 말할것도 없다. 그것이 우리 인간사회의 약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 법자체의 불완전성을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법이기에 불완전할 것이고 때문에 법은 인간사회와 더불어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어쩌면 법이란 것은 법망을 피해가려는 인간과의 싸움속에서 계속 발전하고 변해왔다고도 할 수가 있다.
모든 인간에게 예외없이 적용돼야 하는 법이지만 예외규정이 많은 것 또한 법이다. 피해가지 못할 법은 없다는 역설적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최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형법개정 시안 내용가운데 낙태죄 관련조항은 불완전한 법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일간신문을 통해 나태 일부허용이라는 제목을 달고있는 이 조항은 사실상 낙태죄를 없애는 법령이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못하게 하고있다. 이 개정시안은 낙태를 금지해온 과거의 법조항에 「장식」처럼 있던 특별법 「모자보건법」을 현실화 시킨것으로 보면된다.
교계의 강력한 반발속에서 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은 형법에 명시된 낙태에 관한 죄를 사문화시킨 것으로 지금까지 모든 형태의 낙태를 묵인시키는 방패 구실을 해왔다. 법으로 금지된 낙태가 예외법인 모자보건법으로 아무런 법적 제재조치없이 자행되어온 것이 우리의 실상이라면 이번 낙태죄 관련법 재정시안은 법적으로 낙태를 아예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 된 셈인 이번 낙태관련 신설법이 통과되면 약간의 양심이라는 보호막속에 보호되어온 태아의 생존권마저 완전히 박탈되고 만다고 단정해도 좋을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낙태천국」이 아닌가.
연간 1백50만명의 태아가 살해당하는 우리나라에서 사문화된 법조항이지만 낙태죄마저 사실상 폐지가 된다면 이땅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거론 할수 조차 없게된다.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낙태관련 신설 법조항은 아울러 법의 평등성을 완전히 무시한 법령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자신을 변호할 아무런 힘이 없는 연약한 태아를 상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살 권리를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태아를 상대로 일방적인 법령을 제정한다면 그것 자체가 위법이다. 수태당시부터 한 생명을 인간으로 보고있는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명백한 살인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번의 법개정 시안을 놓고 교회는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73년 모자보건법 제정을 필두로 태아의 살권리를 비롯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계속 강조해온 교회로서는 이제 지치다 못해 포기하는듯한 인상도 짙다. 이 싯점에서 교회의 포기는 「생명의 포기」나 다름이 없다 생명을 포기한다면 교회는 이세상에서의 존재. 그 자체의 의미를 잃는다.
잘못된 법은 바로 잡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이번의 경우는 인간생명의 근원적인 문제를 담고있다. 교회가 먼저 해야할 일은 모자보건법 자체를 폐기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다. 이미 자행되고 있는 범법을 기정사실화시키려는 새 법령의 제정을 막기에 앞서 낙태를 조장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을 없애는 일에 한층 분발해야만 한다. 아울러 지금까지 펼쳐온 교회의 생명수호운동을 재점검해야 한다.
그 일을 미뤄서는 안될 것이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중요한 생명수호 작업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그 일에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임신을 조절할수 있는 교회의 가르침을 강화시키는 일이 포함돼있다.
물론 악법이라도 그법이 존재하는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악법은 하루빨리 고쳐야만 한다. 그 일은 정부. 관계부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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