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굴려다니는 게 내 차요,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내 운전기사입니다」(아직) 차가 없느냐는 질문에 유머로 넘기는 말이다. 정말 내 소유로 차가 꼭 있어야 되는가 싶다. 별 불편없이 이용한다면 모두 내차가 아닌가 요즘 자가용은 사목상 불가피하고 더이상 사치품도 아닌것으로 안다. 그러나 교통전쟁을 수시로 치루고 주차난으로 전전긍긍 하는 걸 보면 나의 눈엔 애물단지로 충분한 서울에서 사목하는 한「내차」가 그리 절실하지 않다.
자가용은 그 속성상 편리한 잇점이 있는 반면에 개인적인 사고방식에 빠질 수있다. 적어도 모든 사람들을 통째로 받아 들이는 버스ㆍ전철에 비해서 그렇다. 문 앞에 서면「쫙」갈라지는 버스ㆍ전철은 확실히 대승적(大乘的) 이다. 아직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스ㆍ전철을 이용하는가. 그들 가운데 있으면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심정이 아니라 막연하게나마 동료의식이 생긴다. 불편해도 함께 살 줄 아는 보통사람들의 삶은 애환이 깃들어 있고 사람 사는 맛이 있다. 불편은 작은 도전이 되면서 자신안에 있는 생명력을 살려내는 기능도 있는 것이다.
몇해전, 버스에서의 일이다. 피곤하던 차에 마침 빈자리가 나 재빨리 앉아 한숨을 돌리는데 앞쪽에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자리를 양보할 기미가 없다.「에라 모르겠다」눈을 감었는데, 한참 지나서도「할머니는 여전히 의자를 움켜쥐고 위태롭게 서 있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를 불렀다. 그런데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살면서 매일 미사에 나오는 그 할머니가 아닌가. 딱한 처지를 알고있던 나는 그댁에 방문하려 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었다. 그날 할머니 댁을 방문한 것은 물론이고 피로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작은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참고맙다. 지하철구내 좌석에서 묵주기도 하는 교우의 모습은 또 얼마나 좋은가 노동청년들과「함께걷고」「함께타고」신나게 떠들고, 우연한 만남이 면담이 되고, 초면의 사람도 사목적인 대화를 청한다.
주님께선 걸어 가시다가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혈병을 앓던 여인을 낫게 해주시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깨우쳐 주신다. 그분은 걷는 사목을 하셨다. 그분은 걸어다니는 교회다. 그분의 목적은 오직 하나 인류 구원이라는 비원을 품고 사랑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도 내차가 없어 어느 땐 기동력이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나의 길을 가련다. 그길은 필경 주님의 길이 겠지만. 길이신 주님을 생각하며 행당동 언덕길에 박차를 가한다. 『높은데에 호산나 높은데에 행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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