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위기를 이야기한다. 정치판에서 흔히 이용해오던 의미의 전쟁위기가 아니라 나라 돌아가는「꼴」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꼭꼭 막혀있는 듯한 분위기속에서 늘어가는 것은 위기의식뿐인것 같다.
곧 닥칠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면 골치부터 아픈 것은 몇명 고민자들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이 나라를 마음놓고 맡길만한 위인찾기가 어렵다 못해 심각한 지경에 까지 이른 상황은 갈바를 몰라 헤매는 한국의 정치풍토를 그려주고 있다. 마치「블랙홀」에 빠진것처럼 혼미를 거듭하는 정치판도도 그렇고 경제적 방황은 한수를 더 뜨는 것 같다.
최근 부쩍 부도가 늘고 있는 수출부진의 심각성은 한번쯤 국외로 나가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면 곧바로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얼마전 중국이 섬유수출분야에서 한국을 앞질렀다는 소식은 오히려 상당히 늦은 정보다. 지난해 우연한 계기로 6개월 가량을 외국이라는데서 머물렀을 때 매일처럼 겪어야 했던 충격가운데 하나가 바로「중국의 도전」을 목격하는 일이었다.
한국수출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세계를 누비던 한국의류가 중국세에 완전히 밀려나고 있는 현장은 부지기수였다. 의류뿐만이 아니었다. 가방, 신발에서부터 전화기, 장난감, 헤어드라이어 심지어 이불에까지「메이드 인 차이나」가 판을 치고 있었다. 일부러 중국제품의 하자를 찾아도 보고 한국제품과 품질비교를 해보기도 했지만 품질면에서 가격면에서 우리는 중국에 뒷덜미를 잡히고 있었다.
개방을 논한지 불과 몇년이 지났을 뿐인 중국에 허리띠 졸라매고 30년을 뛰어온 우리가 수출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면(물론 아직은 의류에 불과하지만) 그건 심각한 경제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자신의 주제파악에 지나치게 인식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아울러 중국을 몰라도 지나치게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정치 입안자들이나 관계당국 등이 미래의대륙, 중국에 대해 얼마나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있는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사회적 측면은 또 어떤가. 현재 우리는 마구잡이로 인간의 값이 폭락하고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택시를 타도 겁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겁나는 곳에서 우리는 살고있다. 이래저래 무서워서 교통체증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눈총을 받아가며 구입한 자가용 굴리기도 매한가지다. 도대체 지구상에 이처럼 살기 무서운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큰 폭력은 큰 폭력대로 작은 폭력은 또 그대로 우리의 삶을 찌들게 하고 있다. 감사의 말을 결코 기다려주지 않고 감사의 말을 할줄조차 모르는 민족으로 우리는 전락을 하고있다. 어쩌다 몸을 부딪쳐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보면 그말을 들어야 할사람은 이미 그자리에 없다. 허공에다 대고 미안을 이야기 했으니 이상한 사람이 되기는 십상이다.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녀 오히려 부담을 주는 친절이 있기는 하다. 바로 백화점이란 곳의 친절이다.
졸졸 따라다니는 점원은 오히려 신경이 쓰이고 잘못 만져보다간 놓기도 전에「벼락」을 맞는다. 손님이 만져본 물건을 신경질적으로 정리하는 일부 점원들의 태도에 주눅이 들지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형적인 친절이 넘쳐나고 지켜져야할 질서나 예의는 무시당하는 세상,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얼굴이다.
작은 예의가 무시당하면서 큰 질서를 지킨다는것은 거짓말이다. 사회 저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인간화의 현상. 교회가 먼저 깨어나야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세상속에 사는 작은 그리스도, 평신도는 먼저 깨어나야 마땅하다. 그리스도의 눈으를 세상을 보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웃과 만나는 평신도의 존재가 지금처럼 아쉬울 때는 없는 것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는 평신도들의 직접적인 활동무대다. 이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3백만 평신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이땅의「사람값」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성폭행 세계 3위국이라는 오명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범죄행위가 3위에 오르도록 방관(?) 했다는 사실을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할지도 모른다.
막말로 부자가 되는 일은 그리 급하지 않다. 사람다운 사람이 없는 나라,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못하는 나라에서 잘 산다는 말은 가치를 상실한다.
때문에「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 평신도들의 결단은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할수 있다.
평신도들이 깨어나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사회 전반을 흐르고 있는 위기의식속에서 교회를 제외시킬수 없음이 바로 그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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