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등걸에서 매화 봉오리가 터져나오는 걸 보면서, 나는 감격한다. 이 오묘한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함박눈이 포근포근하게 내리는 날, 창밖을 내다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린다. 참 신비하고 아름답기도 해라. 밤하늘에 수놓인 수많은 별들을 쳐다보면서,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수십억 광년(光年)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머리속이 아뜩해지며 가슴이 콱막히길 그몇번이던가?
비엔나 체류시, 경치좋은 티롤(Tirol)지방의 산악지대(Alps)를 올라가면서, 길가에 깔려있는 수억만개의 다이아몬드 (같은것)이 햇빛을 받아 현란하게 반사하는 걸 보았다. 이 지방 특유의 기후 풍토로 인하여 눈도 아니요 얼음도 아닌 다이아몬드 (같은것) 을 만들어 낸 그 기술자는 누구인가? 알프스 기슭, 스키장의 운무 낀 하늘에 구름 사이 사이로 햇살이 숨어 비치던 그 황홀한 무릉도원을 나는 결코 잊을수 없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압도적인 수량과 그랜드캐년의 거대한 골짜기에 비하면, 우리 산천은 너무도 아기자기 오밀조밀하다. 미국같이 거대한 땅에는 거대한 스케일의 자연을, 한국같이 조그마한 땅에는 정교하고 정치 (精緻) 한 아름다움을 구상하신 하느님의 배려에 감탄할 뿐이다.
가을 날, 대관령 단풍은, 일부러 씨를 골라 뿌린 것이 아닐텐데, 마치 배식을 잘하여 수놓은 스킬 자수같이 현란하고 찬란하였다. 에덴 동산이 백점이면 대관령 단풍은 구십구점은 족히 될듯하다.
일몰(日沒) 시간, 대평원에 방금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의 태양은, 마치 저녘하늘에 별안간 뚫린 큰 구멍처럼, 천국의 빗살을 무한정 지상으로 쏟아붓는 듯하다. 마침내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찬란한 노을 빛으로 물들었다가, 차츰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면서 하늘이 검붉게 변하면, 새떼들이 둥지를 찾아 하늘을 가로 지른다. 귀소본능이 비단 새에게만 한하랴? 사람인 나도 한없이 쓸쓸해지면서 집생각을 한다.
저 하늘의 태양계를 보라. 아홉개의 별이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을 하면서 공전을 하여, 어김없이 딱 딱 시간에 맞추는 그 원리는 어디서 나왔을까?
아름다운 자연속에 들어가면, 왜 엷은 설움같은 것이 밀려올까? 나는 안다. 그것은 저 아담과 하와시절, 잃어버린 낙원(失榮園)에 대한 그리움이요 아픔때문이라는 것을.
동양에서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곧 신(神)이라는 개념과 일치한다는 것을 나는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에 도취하고 자연을 사랑하면서, 그 뒤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느끼고 발견한다. 나에게 있어 자연은 하느님 실체(實體)의 외형(外形)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때,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자연은 우리 마음을 선량하게 또 아름답게 만든다.
인간과 자연은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 서로 통교하면서 응답하는 파트너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과 함께 하나의 삶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전적으로 의존하는 선이다.
『자연!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도무지 자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괴테(Goet-he) 는 일찍이 갈파하였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자연순환의 파괴와 자연자원의 남용은 인간에게 심대한 타격을 되돌려준다. 자연이 경제적 목적으로만 이용된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파괴된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치를 감상하면서 누리는 풍요함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자연을 기술ㆍ산업적인 시각으로만 관찰하는 사람은 자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며, 자연을 멸시하고 평가 절하한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자신의 영혼까지도 산업화한다.
우리는 자연에서 우리의 고향을 체험한다. 고향을 체험하는 기분은 안식과 행복한 느낌이다. 자연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마음의 안정도 평화도 없다.
자연상실과 고향상실은 허무주의의 징후이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반(地盤) 상실이다.
인간은 평화를 희구한다. 그러나 평화문제가 단순히 국제정치 또는 외교 및 군사학의 문제만이 아니다.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모든 지성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평화는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할 때에 비로소 실현된다.
환경보호, 즉 자연보전과 생태계에 안전이 우리의 평화구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싱싱하고 깨끗한 산천초목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맑은 하늘에 새들이 유유히 날고,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가 노닐며, 들과 산에는 뭇 짐승들이 뛰어 다닐 때, 인간은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결국 우리는「환경위기」「생태계의 위기」「환경오염」「자연파괴」「자연보전」「자연보호」라는 말들을 귓등으로 흘려버리지 말고 바로 나 자신의 사활(死活) 이 걸린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으며, 자연으로 돌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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