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사랑과 평화의 장소이며 모든 공포와 의혹과 분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모든 가족이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집이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게 잘 꾸며졌다손 치더라도 집에 함께 있어야 할 가족들이 저마다 바깥 세상에서 떠돌이 생활하다 밥만 먹고 잠만 자는 하숙집으로 전락해 버린 가족관계 안에서는 사랑의 대화나 정이 오갈 수 없는 집이 되어, 집으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게 되므로 집은 있지만 빈집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는 사람들이 번연히 살고 있는 집을 보고도 빈집이라고 말을 하게된다. 이런 뜻으로 볼때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집이되, 하나같이 빈집들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최근 우리 주변은 온통 폭력으로 얼룩져 있고 날이 갈수록 범죄가 빈발하고, 그 방법이 포악하여 악해질대로 악해져 버린 암담한 사회 현실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범죄까지도 날로 급증하고 대담해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심각한 사회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우리 사회에 빈집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본다.
벌써 오래전 부터 미국 등지에서 키보이(key boy)라고 불리던 아이들이 우리나라에도 이제 보편화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맞벌이하는 부부가 직장에 출근한다든지, 부유층 집안의 어머니들이 사회 봉사활동, 취미생활, 모임 등의 이유로 집을 비우게 되면,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은 목에 열쇠 목걸이를 하거나 허리춤에 열쇠를 차고 다니다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가서 직접 대문을 열게 된다. 반겨줄 가족이 아무도 없으므로 자연히 집 밖으로 나가 방황하게 되고 결국에 비행을 저지를 수 있는 많은 주위의 유해 환경에 쉽게 빠져 들어, 아이들의 마음이 병들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오늘의 우리는 가정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더 우선적으로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다 보니 가족 상호간의 만남은 적어졌고 따라서 대화의 부족으로 인한 가정 부재인 빈집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물질적 궁핍이 있는데서는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누구나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물질을 소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것을 물질 중심주의에 우리의 삶 전체를 의존하고자 하는 잘못에 있다.
물질 만능주의에 빠지면 이기주의가 되어, 인간성 상실과 더불어 사랑과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우리 마음안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예전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분명히 누리고 있으나 물질에 의해 인정은 메말라졌고 그 물질의 폐해가 날로 심하여 이 사회가 무질서속에 표류하고 있음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자기 외에는 어떠한 가치도 그 앞에 놓지 아니하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두가 경제적 성취와 물질 풍요를 추구하고자 하는 물욕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모방을 통해 성장하게 되므로,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 만능주의의 가치관과 극도의 이기적인 생활 방식을 아무런 뜻도 모른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므로 청소년 범죄가 빈발하고 포악해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은 가정을 소홀히 여기고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면서 만든 빈집 때문이므로 청소년 범죄에 대한 모든 책임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악해진 사회를 순화시키는 길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생활 태도를 바꾸어 가족간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사랑의 관심을 가져 가정의 사각지대에 버려진 아이들을 복된 가정으로 끌어들이는데 있다. 왜냐하면 결코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 가치들은 가정과 직결되어 있고 가정 생활에 의존하는 인간만이 도덕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가정은 그 본래의 위치를 되 찾고, 현대 사회에 번져가고 있는 빈집의 그릇된 사회 풍조를 불식시켜 나가기 위해 가정의 사명을 다 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가정의 일반적 임무를 인간 공동체의 형성, 생명에의 봉사, 사회 발전에의 참여 등 4가지로 나누어 강조하셨다. 이 4 가지의 임무를 수행할 기본 원리는 사랑이다.
가정은 본래 하느님이 계획하신 대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은 사랑을 실현 함으로써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가정의 일치를 파괴하고 위협하고 저해하는 모든것을 가족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사랑으로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랑이 있는 가정만이 참된 가정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가족 서로가 한결같이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어느 사람이나 따로 따로 놀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우리 그리스도 가정의 온 가족들이 깊은 일치를 이루고 사랑을 나누는 가정 공동체를 만들어 암담한 사회에 말과 행동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 번민하고 고통받고 있는 이웃 가정 안에서도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실 수 있도록 사도적 가정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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