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우린 자주 들을 수 있다. 보통 생각하기를 이웃사촌, 이웃집 즉 가까이 살고 있는 이를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의 바쁜 일상에 쫓기는 우리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이름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지낸다. 다만 자신에게 피해가 있거나 뭔가 필요한게 있을때 우리는 겨우 이웃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이와함께 우리의 사회는 불안으로,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불안과 위협을 피해 우리는 모두 집으로, 콘크리트벽 안으로 쫓겨 들어간다.
우리의 아이들과 부모들, 할아버지 할머니는 갈곳이 없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노인들,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뿐인 우리의 아이들, 술집을 찾아 헤매는 남편들….
이런 외로운 사람들이 자기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자기들만의 만남을 가진다. 결국 갈곳을 잃은 우리는「집단적 이기주의」만 양성할 뿐이다.
이상은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 교회가 해야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건 멀어져가는 이웃의 끈을 다시 연결하여 불신 없는, 인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젠 신자들만의 교회가 아닌 사회전체 사람들의 편안한 친구가 되어서 말이다.
우리 천주교회는 행정구역만큼 체계적으로 조직화 되어 있다. 지역별로 성당이 분포하고 각 성당은 반모임으로 조직화 되어 있다. 이를 이용해 그 지역에 알맞는 특색을 살려 우리 신자들은 이웃 안으로, 사회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야 하겠다. 예를들면 감실을 모신 성당 안은 아니더라도 각 성당마다 있는 강당이나 휴게실을 이용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결혼식장으로 내놓거나, 마을일을 의논하실 회의실, 상담실, 도움의 요청지로, 학생들을 위한 독서실로 이용할수 있을 것이다. 마당은 주차장대신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나 새벽체조를 위한 장소로 활용 했으면 한다. 이 밖에도 옛날 어르신들이 모여앉아 장기를 두시던 편상을 놓고 그늘을 만들어 한 여름이나 가을에 편안함을 즐기도록 하여도 좋을 것 같다. 이 밖에도 더 좋은 생각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 관리하시는 분들의 일이 많아지고, 여건상 불가능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이웃과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사명을 인식한다면 신자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 교회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선교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또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곳으로 문턱이 없는 교회로 남을 것이다.
세리나 창녀들과 함께하신 그분께서 진정 원하시는게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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