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외된다는 느낌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움을 벌렸을 때, 야훼께서 모세를 통하여 개입하신다. 모세가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고 출애굽기는 전한다. 모세의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그의 팔을 떠받쳐서 싸움에 이겼다.
기진한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이 큰 감명을 준다. 모세의 팔을 떠받친 아론과 후르 역시 장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나라 사정이 어렵기만 한 판인데도 서로 제 앞에 큰 감이나 챙기려고 덤벙대기만 하는 우리네 정치지도자들의 꼬락서니에 입맛을 잃은 함이라서 그런지 출애굽 사건을 전하는 성서 말씀의 의미가 새롭기만 하다.
■ 타버린 LA갈비
4월 29일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을 새삼스럽게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사흘 동안의 무법천지는 귀중한 생명과 피와 땀으로 일군 우리 동포의 재산을 앗아갔고, 미국에게는 도덕적인 상처를 입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알맞는 비유가 될런지는 몰라도, 우리 교포들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이 50만명이라니, 전주시 인구만큼이나 된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서는 연로한 분들이 영어를 잘 못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그런 덕분에(?) LA갈비라는 것이 이곳까지도 선을 보였다. 그걸 뜯으며 세상은 참 좋기도 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LA갈비가 새카맣게 타버리고 만 것이다. 참으로 허망하기만 하다.
이번 사태가 하루빨리 잊고 싶은 악몽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는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지금같은 괴로움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분석은 세가지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는 흑인폭동을 불러 일으킨 미국의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사회구조요, 둘째는 흑인들에게 질시의 대상이 된 우리 교민들의 생활 태도이며,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자세라 하겠다.
그곳의 사정을 잘 모르는 처지에서 함부로 말할 수가 없어서 우리 동포, 이미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한 사회학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싶다. 그것은 곧『백인은 우월주의(흑인 차별ㆍ본토인 말살ㆍ아시아인 배척)를 청산해야 하고 우리 교민은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 엔테베 작전
언젠가 이스라엘은 인질로 잡힌 자기네 동포를 구출하기 위하여 특공대를 파견한, 영화의 한 대목같은, 엔테베 작전을 구사한 바 있었다. 여기서 세계의 이목을 한데 모은 엔테베 작전에 대한 시시비비를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동포의 살림이 무참하게도 약탈을 당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의 태도가 너무나 미온적이어서 엔테베 작전을 한번 기억해본 것이다. 불타고있는 한인 거주 지역을 쳐다보면서도 뒷짐만 진 미국의 태도는 참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은 자기네의 고민거리인 인종문제를 우리에게로 떠넘긴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총영사관이 습격을 당해서 업무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부는 유감을 표시하는 성명 하나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은『부시 대통령이 교민 안전에 관심을 나타내고 위로의 뜻을 표명한데 감사한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LA에서는 우리교민들이 그토록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의 여당 정치지도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다음 대통령선거에 서로 제가나서겠다고 노심(盧心)을 읽는 일에만 초사(焦思)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 우리네 지역감정은?
미국의 인종문제도 심각하지만 깊게 골진 우리의 지역감정도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닌듯 싶다. 전주의 어느 언론매체가 조사하여 발표한 전북인의 의식구조를 보면, 우리나라의 최우선 당면 과제로 지역감정 해소가 차지하는 순위는 6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당분간은 각종 선거에서 지역감정이 작용하는 현상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곧, 응답자의 38.8%는 2천년대 이후에도 없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고, 56.4%는 최소한 2천년까지는 없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응답자의 71.3%가 지역감정으로 인해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피해를 경험했거나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 경제측면에서 호남지역이 소외되는데서 느낀다고 응답했다. 어느 특정지역이 소외된다고 느끼는 것, 이것은 결코 가벼이 넘길 성질의 것이 못된다.
소외된다는 느낌, 이것은 반드시 치유해야 할 병리현상이다. 가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조직사회나 국가에서도 그렇다. 소외는 일치와 평화를 깨는 암세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외가 자리한 곳에 모세와 같은 하느님의 일꾼이 필요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는 하느님의 일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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