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당시의 형법에 의해 사형을 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탈출을 권고하는 제자들에게 그가 남긴 말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 특히 법조인들이 즐겨 인용하는 고전중의 고전이다. 「악법도 법」으로 지킬 의무가 있다는 그의 선언은 어쩌면 지난 세기동안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칼을 휘둘러온 무수한 독재자들의 입지를 본의 아니게 높혀주었다는 생각도 든다.
인류 역사상 사형제도의 최대 희생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의의나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죄인이라도 일곱번씩 일흔번까지 용서할것을 가르친 그분 자신은 「내란 선동죄」라는 당치도 않은 거창한 죄목을 뒤집어 쓰고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죄인과 세리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고, 창녀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폭탄선언」들로 기존의 가치질서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들었던 예수님의 발언이 당시 사회규범의 기본들을 위협한 것은 물론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분은 힘이 지배하던 시대하에서는 너무나 허약한(?) 지도자였을 뿐이었다.
오래고 오랜 유목생활, 귀향생활, 그리고 또다시 이 민족의 통치를 받아야했던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그들이 오매불망 고대하던 메시아는 힘의 구원자, 적들을 쳐부수어 이기는 「왕중의 왕」이었을것이다. 그들의 구원자의 전형은 구약의 야훼 하느님이었다. 그들의 역사에 깊숙히 간여하시어 때론 벌하시고 때론 무서운 힘으로 적들을 물리 쳐 이기신 야훼 하느님만이 그들이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힘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완고한 율법학자들과 이들의 비위를 상하게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우유부단했던 유대의 로마총독, 그리고 우매한 민중들이 함께 내린 언도는 사형,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죄목을 뒤집어 쓰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분 역시 보잘것없는 인간이 만든 악법에 순응하신 것일까. 그것은 이 세상, 우리 인간에 대한 그분 사랑의 극치가 아닐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의 극치는 오늘 인간이 인간의 판단으로 인간의 생명을 좌우지하는 사형제도의 존폐를 놓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엄숙하게 돌아보게 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사형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신 그분의 사랑안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최근 사형제도 폐지 심판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눈앞에 두고 서울대교구 교도사목회가 펼치기 시작한 사형폐지 서명운동은 인간의 기본권이라할 생명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이 서명운동과 더불어 선포된 결의문의 요지는 『신의 재판이 아니라 인간의 재판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생명의 주재자는 단 한분, 하느님뿐이다. 다라서 인간이 인간생명을 박탈하는것은 하느님의 절대권위를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지을 수 밖에 없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촉구하는 근본적인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수 있다. 더구나 이 제도가 안고있는 제한성=오류를 생각할때 우리는 사형제도의 조속한 폐지를 촉구하는 교도사목회의 범교회적 서명운동에 적극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결코 인간의 범죄를 줄이지 못했다는 교훈을 얻고있다. 일벌백계라는 선진적 의미의 효과도 이미 기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고있다. 더구나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를 가르친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는 선택의 여지가 결코 없는 결단이어야 마땅하다.
사형제도의 폐지 심판을 목전에 두고 이제야 서명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아쉬운 일이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볼때 너무 늦은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추진해야만 할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복음화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것이다.
아울러 교회는 사형제도의 존치를 강력히 요구할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생각해야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사형제도의 폐지와 더불어 교회는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으며 살수 있는 사회적 풍토마련에 앞장서야만 할것이다. 범죄란 것이 우리 사회에 발을 디디지 못하도록 교회가 나서야 할일이다. 그것은 바로「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한」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해 교회가 할일은 참으로 무궁화다 하겠다. 경제제일주의가 부른 우리 땅에서 몰아내는 일에서부터 정치, 사회, 교육, 가정, 지역사회, 등등에서 왜곡되고 변질된 정의를 바로잡고 잘못된가치관을 수정하는일 등이 그것이다.
스러져가는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교회의 중요한 몫이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일은 곧 인간생명을 보호하는 일중의 하나다. 때문에 교회는 사형제도 폐지에 앞장서야만 한다. 그것은 사형제도가 필요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교회에 맡겨진 막중한 임무임을 깨닫는 일에서부터 출발 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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