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앞서거나 뒤서거나 간에 시간차는 있지만 누구나 다 죽어야 한다. 언제나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며 죽으면 없어지고 만다는 생각때문에 죽음을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누구나가 다 영원히 살았으면 하는 욕망을 지니고 있고 이 세상에서 못다한 행복은 죽은 다음에 얻어 누렸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서 현세에서 양심적으로 착하게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아무튼 죽음을 우리의 본성으로 보느냐 아니면 신앙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견해가 달라진다.
이왕이면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말고 오히려 긍정적인 면에서 생각하여 죽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해주신다고 믿을 때 우리들의 인생관은 아주 달라지지 않겠는가.
「세상도 가고 세상의 정욕도 다 지나가지만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Ⅰ요한 2, 17:Ⅰ고린토7, 31).
마치 어린아이들이 엄마를 믿기때문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마냥 행복하게 자라가듯이 우리들도 하느님을 믿고 살아간다면 무슨 걱정인들 있겠는가. 하느님과 함께라면 불가능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든가, 하느님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믿을데가 따로 있고 그럴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믿음이 순수하지 못하며 결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믿음이 되고만다. 오로지 하느님은 전능으로 당신 사랑을 몽땅 다 우리에게 쏟아 주시는 하느님이신데 돼 그리도 못미더워할까?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코 16, 16)고 하셨다.
이 세상의 보화와 명예, 권력을 얻기 위해서 피눈물나는 노력과 희생을 해야한다면 하물며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얻어주는, 신앙을 키우고 빛나게 하는데는 그와 못지않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믿음도 자주 가꾸어야지 그대로 두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못한다.
신앙을 돈독히하고 하느님께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의지하는 기도생활뿐이다.
『당신들이 기도하며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이미 받았다고 믿기만 하면 그대로 다 될 것이다』(마르꼬 11, 24).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허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부산MBC 부국장 백성기씨가 주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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