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말로 우리들을 쩔쩔 매게 하는 친구 한사람이 있다. 어느날 또 술꾼의 즐거움에 대하여 한 말씀 계셨다. 술꾼의 최고 즐거움은 술을 전혀 못하는 여성을 꾀여 마시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술꾼이든 아니든 동석한 여성에게 맥주 한 잔은 권해야 하는 세상이라 별로 신기할 것도 없지만 신랑 친구들이 신부에게 한잔 들라고 떼를 쓰거나 졸업 패스티발 같은 데서 여학생 술먹이기에 골몰하는 수작들도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고 발달심리학을 업으로 하고 장난을 부업으로 하는 이 친구는『술의 문화는 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도 하였고『여성도 하느님의 자식이라 남녀동등의 입장에서도 여성과 술은 가깝다』고도 하였다. 얼핏 헛소리같은 말이나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다고 열을 내기 때문에 술과 여성과 신앙이 적어도 삼각관계는 아님을 찾아보았다.
아기를 가진 여성이 포도주 한 잔을 한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멋있는 글라스에다 좋은 술로 보였다. 기분도 퍽 좋아진다. 잠시 후 배속의 아기도 엄마와 꼭 같은 기분이 된다. 행복한 기분이다. 알콜은 태반을 통과하여 태아의 피 속에 나타난 것이다. 어머니가 한두 잔 더하면 아가야도 한두 잔 더하는 셈이다. (임신 초기의 여성이 술을 마시면 기형아를 낳을 위험이 높으며 기형이 아니더라도 지능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경고를 환기합니다) 엄마가 행복할 때 배속의 아기도 행복한 표정을 한다.
임신 8개월의 아기가 활짝 웃는 얼굴을 초음파로 촬영한 사진이 의학서적에 실려 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신은 오직 인간에게만 웃음을 허락하셨다. 웃음은 언어와는 달리 어떤 민족에게도 통하며 남을 흐뭇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첫 웃음은 생후 6주일 정도가 넘어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임신 6개월의 엄마가 불행한 느낌이거나 안절부절 할 때 아기도 함께 안절부절 하며 욕구불만으로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빨아 손가락이 퉁퉁 붓는 것도 이젠 비밀이 아니다. 행복할 때는 행복물질이, 언짢을 때는 불행물질이 화학부호가 되어 알콜(술)처럼 태반을 통하여 아기에게 전달된다고 추정한다.
어머니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 술은 술대로 착한 생각은 착한 생각대로 아기에게 전달된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그것이 황홀한 시점에 이를 때 아기도 황홀하다. 이때의 아기는 벌써 신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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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는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이다. 별로 안녕하지 못할 때라도 활짝 웃으며 손을 잡는다. 한두 마디 말을 건네다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보던 얼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느낌은 얼굴에 한하지 않고 풍경이거나 물건일 수도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처음 먹어 보는 것 같지 않는 처음이 있다. 얼마 전에 일본인 교수 한 사람에게 유과를 대접하였더니 과자를 입에 넣는 순간『앗 이건 전에 많이 먹던 것 같은데?』라고 했다.
아주 귀하고 그리운 맛이라 하여 몇 개를 포장해 선물하였다. 얼마 후 그에게서 온 편지에 그 유과를 가족과 나누어 먹었는데 자기 어머님이 어릴 적 외갓집에서 자주 만든 과자이며 아무래도 자기는 한국인의 후손같다는 부언이 있었다.
또 K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비인후과 의사는 어느 날 백화점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 야자수 열매를 보는 순간 생전 처음이 아닌 것 같은 애착을 느껴 몇 개를 사게 됐다. 열매의 무게도 대단했지만 두꺼운 껍질은 바로 고통 그것이었다. 고생 끝에 송곳과 끌로 뚫고 구멍으로 물을 빨아들인 순간 독특한 맛이긴 하나 기대했던 신기함은 없고 흔히 마시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하였다. 아내를 제외하고 아이들도 별로 신기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자기들 선조는 폴리네시아계의 피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어느 책에 썼다. 이것은 단순논리 같은 추정만이 아니고 뇌파계를 이용하여 동양인과 서양인,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음파 전달의 차이를 수치로 알아내고 이것으로 인종결정을 시도한 논문으로 자신의 조상 찾기를 뒷받침하였다.
무엇이 처음 보는 것, 처음 느끼는 것을 처음이 아니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사고(思考)의 유전으로 설명된다.『처음 뵙겠습니다』그러나 많이 보던 얼굴은 자신이 아닌 자기의 선조가 가까이 했던 얼굴이다. 기억이란 뇌세포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신체의 모든 세포들의「오케스트라」로 된다는 것이 최근의 학설이다. 축구선수의 다리 근육 세포들은 공처리의 기술을 기억하고 테니스 선수의 오른팔 근육은 왼팔의 그것과는 기억의 차이가 뚜렷하다. 하던 운동을 오래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면 얼마 가지않아 옛 기억을 되살린다는 것은 우리가 잘 경험하고 있으며 체질이나 성격이 유전하듯 생각 또한 DNA의 부호 차이로 바뀌어 세포에 기억되어 유전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하러 오신 신부님은 주문모 신부님이시다. 그분도 처음으로 한국의 백성과 산야를 보셨지만 우리 조상도 믿음을 통하여 처음으로 그분을 보았다. 그 처음에 함께 한 조상의 기억은 손손대대로 유전되어 그 가문의 믿음은 오늘의 것이 아닌 2백년 세월동안 다져지고 순화되어 성스러움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이 후손들의 아기들은 찬송과 주기도를 자장가 삼아듣고 태어났다. 태어날 때 그는 이미 깊은 신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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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40에 교리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유아영세였다. 교리 암기에 고생스러운 처지에서는 공차타는 듯 생각되었다.『얼마나 좋을까 공부하지 않아도 좋고』라고 말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공차가 아님을, 그리고 우리와는 양과 질에서 엄청 차이나는 믿음임을 여성과 술과 믿음의 옴니버스를 엮으면서 새삼 느끼고 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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