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들은 금년이 25주년되는 은경축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요사이 동기 신부들로부터 하나둘 은경축을 알리는 소식에 접한다.
내가 처음 신부가 될때 「사제라는 제2의 그리스도」라는 말을 늘 기억하며 「대중속의 한사람으로서의 사제」가 되기로 다짐하며 출발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한없이 부족했다는 생각만 든다. 특히 신학교에서 항상「신부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면서 가르쳤지만, 나는 신부가 되고나서 사람이 될려고 했으니, 많은 시행 착오와 인격적인 결합 등으로, 사제 본연의 자세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초라한 모습의 나를 발견 할 뿐이다. 사제 활동 어려움이 있을 때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힘이 되어준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준다. 내가 도와 준다』(이사야41, 10)하시는 말씀을 되새기며 일어서곤 하였지만, 인간적인 나약성은 어쩔수 없어 약해질 때도 있었다.
25년의 사제 생활중, 나는 사제가 된 것을 사랑스럽게 생각하며 마음 뿌듯한 긍지를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 「사제의 첫 의무는 하느님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것」(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4항)이기에, 신부가 되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예비자교리 강의도 나에게는 많은것을 남겨 주었다. 이제까지의 사제 생활 가운데 그래도 보람있고 흐뭇하게 생각되는게 있다면, 「사회 정의를 가르치고, 사회 문제 각성에 대한 필요성을 일깨워 주며, 모든 인간의 기본권을 거듭 강조함은 교회의 의무와 책임」(한국 주교단 사목교서, 1975년 성년반포에 즈음하여)이라는 가르침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마음에서, 교회의 현실 참여에 선구자적인 구실을 하셨던 운주교구 지학순 주교님의 구속을 계기로,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 다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수원「말씀의 집」에서 지난87년 40일간의 영신 수련 피정때, 나는 사제는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하느님의 깨우치심을 강하게 받았다. 사제 생활 25년을 맞은 금년에, 나는 이 다짐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긴다.
사랑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이제까지 나는 너무 밖에서만 겉돌았다는 생각이다. 20년전 대전에 있을 때부터 나환자를 도와주는 릴리(Lily)회에 관심 깊게 참여하여, 본당을 옮길때 마다 알리고 강조하며 돕기도 했고, 추석 명절이나 설날 같은 때엔 미사 예물 전액을 불우 이웃돕기에 사용하기도 했지만, 늘 아쉬움이 남는 선에서 그칠 수 밖에 없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요한3, 16)주시기 까지 하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간절한 말씀을 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오한13, 34-35).
이 말씀을 늘 염두에 두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와 줄 수 없을까 고심하던 중, 1987년 4월호「경향잡지」에 인천 숭의동 성당에서 실시하고 있는「사랑의 고리회」에 관한 기사를 주의 깊게 읽고, 나름대로 그곳 본당 신부님께 연락하여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교우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발족시킨 것이 대전 대사동 본당에서의 「사랑의 나눔회」였다.
1987년 6월14일자「가톨릭신문」의 이천시 부평5동 본당에서의 아름다운 기사는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본당 예산의 40%를 이웃돕기에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기뻤다. 또 그런가 하면, 그곳 본당 신부님은 생활비로 받는 액수에서 10분의3을 이웃돕기로 내는데, 그 중 10분의1은 십일조로, 10분의1은 독신생활을 하니 내는 것이고, 10분의1은 그냥 내고 싶어서 낸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잠시 초대 교회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살펴보면, 무언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사도2, 44-47.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20, 30)는 진리의 말씀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며, 그대로 흘려버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참으로『자신을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루가12, 21)은 아닌지, 주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씨가 가시덤불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속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의 여러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마르4, 18-19)라고 설명하시는데, 나 자신이 혹시 이런 경우에 속한 사람은 아닌지 깊이 살펴야 하겠다.
지난 90년8월 현재의 서산으로 이동되어, 바로 그해부터「사랑의 나눔회」를 조직했다. 작년 한해동안 2천4백여만원이 들어오고 나갔다. 사제는 사랑의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고 깨우쳐 주심을 따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나의 삶을 살리라고 거듭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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