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주일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이날은 1965년부터 지난해까지 「침묵의 교회물 위한 기의 날」로 지내온 것을 금년부터 그 명칭을 바꾸어 지내기로 결정한후 처음 맞는 해이다.
주교회의가 과거 27년간이나 사용해온 명칭을 바꾼 것은 「침묵의 교회」라는 단절과 협의의 개념을 탈피, 더욱 복음적이고 시대적 요청이기도 한, 민족전체를 대상으로 「화해와 일치」를 모색하려는데 그 근본취지가 있는 줄 안다.
주교회의가 복음과 시대적 필요에 부응해 그 명칭뿐 아니라 기도의 날 설정목표로 바꾸어 지내도록 한것은 시의적절한 조처로 여겨진다.
문제는 40여년간을 철천지 원수처럼 벽을 쌓고 살아온 같은 민족이 어떻게 하면 그 높은 벽을 헐어내고 화해와 일치를 이룰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화해와 일치는 분쟁이 있은 개인간에도 쉽지 않다. 또 적대감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그 만큼 더 풀리기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비록 동족이긴해도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속에서 40년 이상을 적대관계에서 살아왔다면 화해와 일치가 얼마나 힘든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가 아무리 어렵게 느껴져도 그것은 언젠가는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민족적인 대과업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마음과 마음간, 내적인 화해와 일치 없이는 남북의 진정한 통일은 이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은 현재 평화통일을 달성할 때까지 서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해나가자는 합의아래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 놓고 있다. 이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통일의 날도 요원하지만은 않으련만 그렇치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합의서는 북측의 대외선전용에 불과하고 내막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지난날의 대남전술이 계속되고 있다.
이 싯점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 곧 회심이다. 이 회심은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는 전제조건이며 이 회심없이는 화해가 성립될 수 없다.
남과 북은 지난날의 과오를 솔직히 시인하고 뉘우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특권소수를 위해서 또는 당리당략적으로 남북관계를 이용하려는 저의를 버려야 한다. 그래서 이 민족과 역사앞에 더 이상 같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교회의 북한 선교위원회가 금년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 맞추어 13일부터 21일까지 9일기도를 전국적으로 바치도록 하고 그 지향을 바로 「화해와 일치」에 두도록한 것은 의의있는 일로 생각된다. 도한 아닐 북한 및 연변교회 지원과 사제양성기금마련을 위해 명동성당에서 자선바자회를 갖는 것도 현시점에서는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전국의 모든 신자들이 이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적극 동참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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