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소아마비에 걸린 나는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었고 주변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힘들었던 삶이었어도 돌이켜 보면 나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고마웠던 친구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새봄이 오면 버들강아지 소복한 남산길을 올라 진달래 한아름 꺽어오던 일, 소나무 꽃인 「송화」를 달다 달다하며 따먹으면서 배고픔을 잊어버렸던 일, 할아버지 드리려 산딸기를 따고 싶었지만 소아마비로 걸음이 불편해 대신 들꽃 몇 송이를 꺾어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 일….
그리고 등하굣길에 손을 잡아주고 가방을 대신 보답하리라는 믿음을 갖고있다.
『하느님 저의 모든 은인들을 주님께 바칩니다. 그 예쁜이들의 선행을 지나쳐 버리지 말으시고 저로서 할 수 없는 무한하시고 무량하신 선물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허약한 나를 위해 고생하신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진지상에만 올려 놓는 꽃게를 살발라 밥 한공기를 다 먹여야 잠자리를 마련해 주신 어머니….
국민학교 6학년때 10리 길이 힘겨워 석양에 붉은 노을을 뒤돌아 보며 『내 발걸음은 더 빨리 못가나…』안타까워하며 손밭까지 마중나온 엄마 등에 업히던 일.
유난히도 잘 거꾸러지는 나는 무릎에 딱지 질 날이 없어 항상 모래가루가 상처에 박히고 얼굴에는 눈물 얼룩이 질새가 없었다.
이때가 영세를 받기 10년 전이었다. 하지만 한반 친구였던 마리아가 가르쳐준 기도문은 나를 위로하였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를 되풀이 하면 작은 평화가 찾아왔었다.
그러던 중 동생들이 중고등학교를 인천에서 다니게되어 단칸 전세방을 얻어 객지생활이 시작되었다. 동생 친구들과의 만남은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고 그들과의 대화와 놀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22, 송학동 집에서 하숙을 치던 나는 p선생을 만나게 된다. 29세, 클래식 음악의 애호가로서 음악상식이 풍부하고 오페라 아리아와 깐쏘네를 부를줄 아는 성악적 재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음악과 문학에 대한 풍요로운 대화가 오가며 내마음은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친구이고 싶은 생각과는 달리….
하숙 10달 후에 떠나 버린 그는 2~3년 동안 문득 문득 나를 찾아와 바뀐 명함을 주고 가곤 하였다.
마음안에서 그에 대한 그리움이 병이되고 있었다. 아픔을 잊기위해 하루 하루의 삶을 바쁘게 살았다. 국민학생 과외지도, 집안일 삯뜨게질, 음악회 모임 참석 등….
그러나 내 심중에는 언제나 P씨와 가졌던 영상 어린 대화의 뿌리가 깊어갔고, 또한 잔뿌리가 싱싱하게 뻗어 나갔다. 결국 이로인해 정신질환이 오고, 2년 가까운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내 나이 44세, 아직까지 약을 먹어야 잠을 잔다. 그래도 대체로 명랑하게 사람들 축에 어울려 잘 지낸다.
레지오 단원 선서한지 3년이 된다. 정신질환 20년의 고통을 지난 3년동안은 묵주를 움켜 쥐고 헤쳐올 수 있었다. 언제나 성모님의 심부름꾼들이 찾아주고, 기도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몸은 주의 사랑만을 믿사옵니다. 이 몸 건져주실줄 믿고 기뻐합니다. 온갖 은혜 베푸셨으니 야훼께 찬미 드리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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