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로마 안젤모수도원 203호. 눈을 떠보니까 날이 밝았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순간 노크 소리가 났다. 문을 여니 정의철 신부님이 로만칼라에 수단을 입고 서 계셨다. 신부님과 함께 소성당엘 갔다.
성당엔 정신부와 나 두사람뿐이였다. 정신부는 매일 아침 혼자 또는 찾아온 교우와 아침미사를 올린다고 했다. 나는 안젤모 수도원에 체류하는 일주일동안 세번 미사를 참석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미사였다.
신부와 나. 그 느낌은 은총을 혼자서 받는 것 같았고 그 체험은 나의 신앙 생활에 무한한 은총으로 남았다. 지금도 「피의 증거」황사영 백서를 쓸때면 그때 그 순간이 뇌리에 스친다.
정신부님과 나는 바티깐 베드로 성당에 있는 박물관을 찾았다. 바티깐 패스포드를 가지고 있는 정신부님의 주선 이어서 박물관 2층 관장실 요셉 펜코우스키 주교님을 만나자 주교님은「황사영백서」진본을 풀어놓으셨다. 81년 제천 베론에서 백서의 탁본을 보고 십년만에 보는 진본이었다.
1801년 황사영이 처형되고 1백년간 의금부 창고에 흉서라하여 폐기되었던 백서가 1백년만에 소각직전 문서지기가 천주학쟁이 이건용에게 던져준 백서가 릿델 민 주교에게 전해져 목판 인쇄되어 탁본만 이땅에 남기고 바티깐 비오 11세 교황성하에게 봉정되었던 그 백서였다. 그리고 극동편 박물관에서 50년간 자취를 감추었던 백서가 1984년 진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 근 1백90년만에 한 한국의 방송 프로듀서 눈앞에 그 진실을 드러내놓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진으로 그 진실을 찍어 귀국후 소설「피의 증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국 가톨릭연극인 협회를 창설하였다. 또한 11월부터 새남터 순교자 기념성당에서 매주 가톨릭 연예인 미사를 봉헌. 6월 현재 32회의 미사를 올렸다. 또한 황사영 백서「피의 증거」는 성 황석두 루까서원에서 출간하는 「천주교 문학」에 5백매의 원고를 넘겨 창간호에 3백90매, 여름호에 1백10매가 게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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