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정치」가 선언되고 있다.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민주당 소속 12명의 초선 의원들이나 이들의 선언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국민운동으로의 확산을 촉구하는「시민의 모임」이나 국민들의 눈엔 신선하기만 하다. 어둡고 침침하고 막막하기만한 미래를 점치고 앉아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이보다 밝고 희망적인 선언은 아마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선언이 없어서 일을 못한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기쁨도 잠깐이다. 희망도 어느틈엔가 날아가 버린다. 선언은 오히려 화려했으며 난무했다는 생각이다. 선언이 있고 결심은 있되 실천이 뒤따르지 못했다는게 정직한 진단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정치의 경우 가장 극심했던 공해가 바로 말의 선전、선언이었음을 의심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우리의 경우 정언이 바뀌었다는 표현이 옳은것인지 판단은 서지 않지만) 내걸었던 정치공약이라는게 실천만 이루어 졌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의 모습은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천이 따르지 않은 공약、정치적 선전때문에 우리사회는 그동안 다람쥐 체바퀴를 돌듯 제자리 걸음을 해왔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쳐왔다는 진단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공직자들의 눈먼 행위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않을 수 없다.「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정치일선에서 제일 많이 반복되어온 구호이건만 아직도 우리는 공직자들이 뇌물수수나 직권남용 사건을 아주 빈번하게 목격하며 살고있는 현실속에 있다. 혹자는 지금처럼 공직사회가 부패하고 공무원들의 기강이 무너진적이 없었다는 비평을 서슴치 않고 하기도 한다.
어쩌면 집권말기에 나타나는 누수현상이라고 우습게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보통시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곤 ▲매일처럼 터지다시피하는 높은 사람들의 비리를 참고 보는 일과 ▲아침에 눈만 뜨면 잡을수 없은만큼 멀리 달아나 있는 물가와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일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머리속에 새겨진 일 외에 없는것 같다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
모처럼 신나는 소식에 접하면서「초를 치자」는 심술은 결코 아니다. 좋은 소식에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겪어온 정치관의 모습은 토대로 몸에 밴 습관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걱정이 기대라는 무게만큼 클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믿음과 신뢰는 인간관계에 있어 기초가 되어야 한다. 개인과 개인은 물론 집단과 집단、집단과 개인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신뢰와 믿음이다. 하물며 국가의 중대사를 송두리째 맡고 있는 정치권과 국민사이에 있어 신뢰는 그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수 있을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닐수 없는 것이다.
개인의 삶을 영위하거나 국가운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그 요소」가 지금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문제의 핵심이다. 영양분의 결핍이 인간의 건강을 해치듯 믿음과 신뢰의 끈이 떨어진 나라의 건강상태는 엉망이고 진창이다. 깨끗한 정치가 선언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질수만 있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신뢰를 찾고 끊어진 믿음의 끈을 이을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깨끗한 정치를 향한 이같은 시도는 자정(自淨)을 선언한 12명 의원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의 모임、그리고 깨끗한 정치만이 살길임을 앞장서 일깨워 주고있는 김수환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종교계 인사들의 결단에 의해 그 향방이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것이다.
우선 김추기경의 강조대로 12명의 의원들은 자신들의 선언을 스스로 지며 가야함은 물론 그 물결이 제14대 국회의 선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들의 결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시민의 모임에 선봉에 나서준 종교에 인사들은「교회의 이기심」이 정치인들의「깨끗한 정치 선어」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만 할것이다. 정치의 개혁、자정운동이 제 힘을 발휘할수 있도록 교회는 마땅히 적극적인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적인 감시자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사실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이 선택은 모든이에게 동참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치관행을 바로잡고 믿음과 신뢰를 토대로 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이른바 정치개혁은 일부 정치인이나 종교、사회지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하루빨리 국민의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새로운 도전은 늘 힘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내가 희생을 하지 않으면서 남의 희생을 강요할수는 없다. 정치의 자정운동은 국민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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