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말을 천천히 생각해서 하고 행동도 느리게 하는 것을 점잖다 양반스럽다고 생각하며 좋게 평가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성급하게 서둘고 조급하게 덤비게 되었다.
광복을 맞이하여 새나라를 건설하면서 구미의 선진국을 쫓아가기 위해서 또 우리의 적이었던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 바삐 서두르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시행해야되겠고、산업도 발전시켜야 되겠고 짧은 시간에 모든걸 해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것 같다. 그뒤로 날이 갈수록 산업화한 사회속에서 경제발전에 치중하고 박차를 가하는 정책 속에서、너도 나도 앞서 부자가 되어야겠다. 일확천금을 해야겠다. 출세해야겠다 하면서 점점 더 서둘게 된 것 같다.
산업사회는 신속화 (迅速化)를 요구한다. 우리가 일본의 산업에 닥친것이 초조하고、日人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것이 능률적이고 효과적인것 같이 보여서 점잖은 체며 다 팽개치고 서둘게 된것 같다.
그 신속화가 어느 정도까지는 산업발전에 도움을 주었던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서 오늘날 무서운 조급증이나 성급함으로까지 진전된 것 같다.
신속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본질이라고 할 자기반성이나 자기비판을 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행동하게 되고、소위 타인지향형 (他人志向型)으로 되어버린다.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 집 앞 강남대로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튀어나오는 차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아마도 교통사고가 세계제1위라는 불명예도 이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로서 뒷차가 염치없이 앞질러 뛰어드는 예는 흔히 있는 일이다. 총알 택시의 횡포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의 거리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것과도 같다.
속전속결 (速戰速決) 일사불란 (一絲不亂) 의 군사문화에서 연유된 점도 크다고 보아진다.
학문을 연구하는 데도 단숨에 해 치우려는 경향、책을 쓰는 일도 단시일에 써버리는 경향이 보인다. 꾸준하게 깊이 연구하여 10년만에 책 한 권을 쓰는 풍조는 사라져가고 있다.
이 성급함은 생산직에 있는 기술자들이 물건을 성의없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량품이 많이 쏟아져 나오게된다. 기성복의、솔기가 쉽게 타진다거나 단추가 금새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경험한다. 냄비 손잡이가 쉽게 떨어지고 전자제품도 고장이 잘 난다.
우리의 기술이 근본적으로 선진국에 뒤진 점도 있겠지만、최선을 다하지 않고 성의없이 만든다는 데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사람들이 호텔에서나 식당에서나 실수와 실례를 연발하는 것도 이 조급함에서 연유되는 수가 많다. 남의 나라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 놓고、기다리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사람은 한국사람뿐일 것이다.
성급하게 지은 건물이 아름답고 견고할 리 없고、조급하게 이룩한 문화는 높이 평가받지못할 것이다. 성급하게 염색하고 직조한 옷감은 탈색이 잘되고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잠언 18장 2절인、『발이 빠르면 헛딛는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논어 (子路編) 엔 자하가 공자에게 정치의 요점에 대해 묻자、『급하게 서두르지 말것、그리고 사소한 이해관계에 눈을 돌리지 말 것이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쉽고 사소한 이해관계에 마음이 끌리면 큰 일을 이룩할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조급한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게되고 소위 무사려증(無思慮症) 에 빠지게 된다. 남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밖에 모르게 되며 앞으로 다가올 결과나 후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조급증이나 성급함은 단순히 사람의 성격에서 오는것만은 아니고 도덕성의 결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아진다.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남의 사정을 돌보지 않는 심성과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종류의 조급증은 넓은 의미의 정신질환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멀리는 해방 후부터、가까이는5ㆍ16 혁명 후、우리나라의 한 가지 사회병리 현상이라고 보아진다.
우리는 본래 천수답(天水沓) 을 주로 경작하는 농업국가로서、비가올때 바짝 서둘러 모심기를 한다든가 물을 저장한다든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일반 농민들은 선의의 조급증에 빠질 소지가 전통적으로 다분히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조급증은 이만하면 한계점에 도달한것 같다. 숨 좀 돌리자!
남의 생각도 좀하고 앞일도 내어다보면서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정성스럽게 물건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만 잘 살아야겠다、남을 제 끼고 앞서 가야겠다 하는 생각 대신 다른 사람을 염려하고 근본적으로 욕심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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