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ㆍ25가 나던 해에 어린아이였다. 전쟁의 비참한 참상과 이산가족의 쓰라린 이별을 먼 발치에서 구경하는 구경꾼이었다.
자라면서 매스컴을 통하여 비춰지는 북한의 실상들이 믿겨지지않아 항상 의문을 가진 나에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침묵의 교회를 알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신앙은 자유다. 그러나 전교는 할 수 없다」는 중국, 45년전 1백44개의 교구와 20개의 관구가 존재했다던 거대한 중국교회를 90년 11월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곳 중국에서 북한의 한 민간인 할머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할머님과의 합숙을 통해 북한의 실상과 교회소시, 전쟁후 성직자 수도자들에 대한 박해의 참상등을 소상히 알수 있었다.
할머님의 세례명은 알바나, 몇대에 걸쳐 치명당한 순교자집안의 후손이었다.
긴 세월, 반세기가 지나도록 할머님은 가슴에 새겨진 고문의 끔찍함과 죽음을 잊을 수 없다면서 나의 품에 안겨 오열을 토하시며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셨다.
인민군의 총부리에 숨져간 신부님을 남의 눈이 무서워 수습하지도 못하고 며칠후 찾아보니 차디찬 얼음판 위에 시신과 피는 굳어있고 오직 살아있는 것은 째깍째깍 소리 내며 돌고있는 시계 뿐이었다며 통곡하시는 할머니.『하느님이 어디있느냐?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당신 종들을 그렇게 죽도록 놓아둘 수가 있느냐』하시며 할머니는 데굴데굴 구르시면서 그날의 참상을 아파했다.
45년동안 한번도 미사참례는 물론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지도 못했단다. 손자들과 자식들이 다 잠자던밤 혼자 외로이 무릎 꿇고 주님께 애원하며 기도해온 반세기였다.
전 인민에게 특집으로 보여준 TV화면에서 방북한 문규현신부님이 들려주시던 천주경 (주의기도)소리가 알바나씨의 가슴에 생명수를 부어주는 듯하여, 45년간 숨어서 해온 기도를 그날 집으로 돌아와 큰소리로 외어 보았다던 할머니, 그러고는 서러움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없이 우셨다고 하셨다.
당신께서 살아계실동안 단한번도 미사성제를 드리지 못하고 죽는 줄 알았다며 우리와 함께 미사를 드리시면서도 내내 우시던 알바나씨.
지금 북한에는 평양천주교회가 있는데 등록하라고 선전은 하지만 진실한 신자들은 그들의 만행과 언제 변할지 모르는 불신감때문에 아무도 등록하지 않고 혼자서 몰래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하셨다.
6ㆍ25이후 반세기 동안 북한에 우리 천주교회 교우가 살아 존재한다는 이 엄청난 사실, 이것은 공산치하에서 순교하신 성직자와 수도자, 열심한 신자들의 공로와 침묵의 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한 우리 남한 신자들의 공덕임을 알수 있었다.
나는 그때 만났던 알바나씨를 잊을 수가 없었다. 헤어지며 묵주를 몇개 드렸더니 십자고상은 놓고 묵주알만 가지고 가셨다.
역에서 서로 먼저 떠나시라고 우기다가 신부님을 먼저 보내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송별해주시던 겸손하고 천사같았던 알바나씨.
같은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한 사람은 북으로 한사람은 남으로 헤어져야 하는 우리의 현시….
『오!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 영육이 굶주린 이동포 이민족을 보옵소서. 그리고 당신을 애타게 찾는 침묵의 교회를 돌보소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 당신의 침묵을 깨소서. 더디 오지 마시고 어서 빨리 오소서. 6ㆍ25이전 교우들은 당신을 부르다가 이제 늙고 병들어 한사람 한사람 죽어가고 있답니다. 그분들이 살아생전 고대하고 고대하던 고해의 은혜와 성체를 영할 수 있는 은총 허락하소서. 당신 친히 세우신 성사를 받지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 당신품으로 가드라도 한많은 세상에서 지었던 모든 죄를 면하여 주주시고 아버지나라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지않게 하소서.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 침묵의 교회를 위해 일하시다 무참하게 순교하신 성직자 수도자들에게도 아버지의 한 없는 자비로 천국에서 면류관을 쓰게 하여 주소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이 부족한 죄인이 밤세워 당신께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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