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고향방문 신청이 쇄도하여 그 숫자가 엄청날뿐만 아니라 거기에 비해 정작 갈 수 있는 사람은 백명뿐이란 현실이 날 우울하게 한다. 내 주위의 몇몇분도 흥분된 마음으로 신청서를 냈다고 하면서 요행히 고향에 갈 수 있길 기도하는 모습이다.
나도 실향민으로 내가 8세때 야밤을 이용, 진남포에서 목선을 타고 부모님과 함께 월남했다. 대동강둑이 터져 평양시내가 물에 잠겼던 바로 그해 가을의 일이다.
남북회담이 전개되며 신문에 내가 뛰놀던 평양시의 동네 이름이 간간히 오를 때도 그랬지만 이번 이산가족 고향방문 기사가 신문에 오르내리면서도 아슴한 내 고향의 골목골목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겨우 8세때 두고 온 고향 골목이 이토록 그리운데, 육순칠순, 팔순을 넘긴 어른들의 가슴에 40여년 이상 품어온 고향 모습이야 오죽할까.
불행히도 난 6ㆍ25를 겪으며 부친의 남북으로 호적이 잘못되어 실향민 대열에서 벗어나 본적지가 동대문구 숭인동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떤 일로 실향민임을 증명하기 위해 종로구청을 몇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구청직원의 불친절함과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씁쓸한 무력함이 나로하여금 고향찾기를 포기하게 했다.
그런데 다시 이산가족 고향방문 기사가 신문에 연일 보도되고 TV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변해버린 내 고향 평양 모습을 비쳐주던 날 다시 고향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이젠 부모님도 모두 고인이 되셨고 그나마 몇분 안되던 월남하신 친척 어른들도 모두 고인이 된 마당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고향 모습 이상의 다른 모습은 들을 길이 없다. 그러니 내 눈으로 내 고향 선교리랑 내가 대동강 철교를 건너 아버지 손을 잡고 입학하러 갔던 명륜국민학교에 가보고 싶은 열망이 날 잠못들게 한다.
하지만 난 내가 평양에서 태어났다는 증명서 (호적) 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내나이 50대. 육순에서 팔순을 넘긴 어른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그 대열에 감히 어린 (?) 내가 어찌 설 수 있단 말인가.
내고향 선교리는 아침이면 유난히 이슬이 빛나던 고장으로 기억된다. 대동강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이 끝도없이 길어 보였던 선교리. 그 둑위로 동무들과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까지 달리고 싶던 선교리. 아침에 강가로 나가면 가막조개를 한바가지씩 주워울수 있던 선교리. 이슬이 잔뜩 밴 풀잎을 들치면 송이버섯이 수줍게 머리를 내밀고 숨쉬던 선교리 동둑.
내 가슴에 문신처럼 박힌 선교리 풍경화의 실물을 내딸에게 보여 주며 자랑하고 싶다. 네엄마의고향 선교리는 하늘 아래 제일 빛나는 아름답고 정겨운 곳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해방 이후 제일 처음 세워졌다는 평양의 성당에서 고향땅을 밟게 해준 감사미사를 봉헌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고향방문단 대열에 낄수 있는 차례는 언제나 될까…. 하루 빨리 남북관계가 잘 되어 누구든, 신청서 따위 없어도 고향에 가서 어린날 동둑을 함께 달리던 동무들의 주름진 얼굴도 보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