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복지는 종교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 분류가 된다. 실제로 종교는 어떤 종류의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복지를 눈에 보이는 활동의 최우선에 두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종교는 자선 행위라는 표현양식과 더불어 발전을 해왔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막론하고 종교는 빈민구제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구호를 신앙인의 표본적 행위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묶여있을 때에도 그 기능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빈민구제는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종교적 행위에 속했다. 물론 당시 교회의 자선개념은 오늘날과는 성격이 상당히 달랐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베푸는, 일종의 선물 형태로서 자선이 행해졌던 역사가 바로 당시의 것이었다.
지배계급에 속했던 교회의 자신행위가 확실한 종교적 행위에 속해있음은 분명하지만 선심의 성격을 띄고 있었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기초적 바탕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교회의 자선, 베품은 지배계급의 그것과는 엄격히 분리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빈민구제나 자선은 교회의 중요한 몫에 속한다. 복지라는 개념으로 확대되고 발전된 교회의 자선행위는 한국교회에 있어 자신의 성장과 그 흐름을 함께 누려온 동지적 입장에 있다고 하겠다. 초기 한국교회만 보더라도 빈민구제는 과부, 고아 돌보기 등과 더불어 교회의 중요한 활동 속에 포함돼 있었다.
그 같은 행동은 체계적인 교육이나 이론적 바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는 곧 우리 신앙의 대선배들이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 근본사상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확실한 예라고 할 수 가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사회와 교회 안에 자리잡은 복지라는 개념은 이 땅에 뿌리 내린 교회와 같은 나이쯤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확실히 「복지」는 교회가 행사하고 있는 여러 기능 가운데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의 경우 복지사업은 참으로 여러 가지 기능으로 확대되었음을 실감할 수가 있다. 그 영역은 장애자, 나환자, 무의탁자, 행려자, 결핵환자, 아동, 여성, 노인복지 등으로 다양화 되었다. 더구나 현재 한국교회는 외국으로까지 복지대상을 찾는 등 시야를 넓히고 있기도 하다.
복지활동이 종교의 긍정적 「기능」 가운데 하나라면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적 분쟁」이야말로 종교의 분명한 「역기능」에 해당한다. 종교라는 이름으로는 전쟁을 치르지는 않는다 해도 현재 자행되고 있는 온갖 유혈사태의 중심에는 반드시 종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엔의 강력한 제재나 개입이 여전히 유보되고 있는 유고의 유혈, 무혈 전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민족 종교 전쟁이다. 물론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아주 오래전 이슬람 교도의 침입으로 고유한 문화, 종교, 심지어 종족까지 말살당한 뼈아픈 과거가 이번 분쟁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만이 전쟁까지 유발시킨 원인은 아니겠지만 만일 뼈아픈 과거가 전쟁과 살육, 인간성 말살 등의 만행을 도발할 수 있는 중대한 이유가 된다면 이 지구상에 살아남아 있을 종족은 도대체 몇 개나 될까? 서로 물고 물리우다 못해 아시아 대륙까지지 진출했던 유럽대륙 전체는 아마도 전멸을 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원리대로라면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은 뼈조차 추리지 못한 민족이 되어야만 정답이 된다.
우리가 직접 대면하고 있는 종교의 역기능을 들자면 난무하는 「사적계시」 사건들을 지적할 수가 있다. 종교의 역기능 가운데 가장 종교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사적계시 문제는 현재 한국교회와 사회안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왜곡된 신앙의 표징으로 지적되는 사적계시 문제는 현재 기성 종교들의 역할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교회안에서 횡행하고 있는 사이비적 종교행위, 왜곡된 신심 문제는 비단 기성종교 단체들의 책임만은 아니다. 그 책임의 한계는 모호하지만 교회가 맡아야 할 몫이 크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바로 종교가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역기능에 대한 책임이라고나 할까?
종교의 역기능에 대한 회의는 종교의 참기능에 대한 가치를 한껏 돋보이게 해준다. 앞서 지적한 자선, 곧 사랑의 실천이라는 기능이다. 바로 이점에서 종교의 정상적 기능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보다 그 폭을 넓혀야 하고 그 역할을 증대해야만 한다.
복지활동에 있어 교회가 차지하는 역할의 증대야말로 재화의 중재자로서 교회의 존재가치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다양하고도 적극적인 복지활동은 부의 편재(偏在)를 자연스럽게 조정해주는 기능까지 가능하게 한다. 교회가 가르쳐왔듯이 「남는 것의 나눔이 아니라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교회는 자신의 실체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교회의 참 기능이자 참 사랑이기도 하다.
제3회 복지주일, 우리 교회는 진정, 우리의 사랑실천 행위가 예수님의 것과 동격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교회가 교회의 참 기능인 복지를 제대로 실천으로 옮기기만 한다면 기아와 굶주림,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자리할 이유가 없어질 것은 너무나 확실하지 않겠는가.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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