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삼각지, 구 육군본부 자리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몇 해 전 육본이 지방으로 내려가고 한동안 내가 나가던 연구소가 그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 넓은 지역은 온통 흉가처럼 변해버려 화려했던 옛날의 그 담당함과 위세는 간 곳이 없었다. 거기서 지내는 동안 나는 역사의 흔적들이 하나씩 지워져 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일본군이 지었던 붉은 벽돌건물들과 미국의 물자로 지어졌을 콘크리트 건물들, 군부의 심장이었던 그 수많은 시설물이 무참히 부숴지고 그 뒤에 새로 설계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현대식 기념관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바뀌는 그 숨막히는 현장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다. 조선시대와 서슬이 시퍼렇던 일본군 시절, 해방, 6ㆍ25, 그리고 무시무시했던 쿠데타의 무대가 되었던 곳. 그래서 지금도 말발굽 소리, 군화 소리, 총성으로 뒤범벅이 된 온갖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어느 날, 점심 후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통하자」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 하나를 발견하였다. 한두 명이 들 수 없을 만큼 제법 큰 돌덩이가 어지러운 쓰레기더미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한껏 멋을 부려 쓴 글씨가 오히려 신경을 거슬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통하자」라는 말이 자주 쓰는 입장어가 아니라서 처음에는 얼른 그 뜻을 알기 어려웠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육본 안에 있던 통신대 건물앞에 세워져 있던 돌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갔다. 당시 어떤 지휘관이 이 구호를 정해 돌에 새겨놓고 그곳을 드나드는 장병들에게 외치게 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쓸모도 없게 되어 버려지게 된 것이리라.
며칠 후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니 어디로 쓸려갔는지 「통하자」 돌은 보이지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통하자는 구호를 외쳐야 했을까? 그러나 오래 전 군에 다녀온 이들이라면 당시 군부대의 전화를 기억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부대와는 물론 같은 영내에서의 통화도 어찌나 애를 먹었던지 전화 한번 하고 나면 배가 다 꺼지고 목이 쉴 정도였다. 전화 연결이 그렇게 힘들었고, 연결이 되었다 해도 통화 중에 느닷없이 끊기는 경우가 보통이었으므로 거친 욕설과 「통화중」 소리를 계속 외쳐대야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실정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불편들은 그동안 전기 통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다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즈음 내 머리 속에서는 그 「통하자」라는 말이 자주 떠오르고는 한다. 구호만 가지고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우리 주위에는 통하자는 구호를 외쳐야 할 경우가 너무나 많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들을 자주 들어왔는데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가는 마음만은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부모와 자녀, 선생님과 학생, 동료와 동료, 친구와 친구, 윗사람과 아랫사람, 부부, 연인 등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마음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픔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예로부터 「버선 목이 아니니 뒤집어 보일수도 없다」는 얘기들을 해왔을까?
방학동안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런 저런 사소한 일들로 마음 상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수 같지 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 같지 않은 노래에 열창하는 아이들이 딱하고 마음에 거슬려 얘기라도 한마디 할라치면 아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공격을 한다. 밥이나 된장보다 과자나 인스턴트 식품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말리다 보면 아버지는 잔소리꾼이고 구식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고전이나 명작을 읽으라고 하는데도 아이들은 만화나 내용도 없는 얄팍한 읽을거리만을 찾는다. 그만한 나이 때는 나도 그랬을 것이라는 반성도 해보고, 억지로라도 이해하는 척 해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개운치 않다. 더구나 이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하는데 생각이 미치면 그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스스로를 돌아볼 때마다 더욱 나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왜 이런 나의 마음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주지 못하는가 하는 자괴감에 있다. 내가 우리 집 아이들과 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주장만을 앞세우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탓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물론 꾸중을 해서는 안되고 언제든 칭찬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대화의 방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나의 마음은 언제나 편치 않고, 그래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싶어한다. 나의 주장이 정말로 옳은 것이라면 결국 아이들 스스로가 언젠가는 그 것을 깨닫게 될 터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통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만이 아닌 것 같다. 세상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속 시원히 터놓고 지내지 못하는 이 답답함은 어디서 오는것일까. 여기서 최근 나는 평범하나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하나뿐인 머리와 입만을 가지고 통하려 하였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신체 중 눈이나 귀 팔다리, 콧구멍까지 중요한 것은 모두가 두 개씩인데 유독 입만은 하나이다. 그것은 그만큼 입의 절제를 필요로 한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입은 음식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말을 쏟아내기도 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그런데 이런 입을 사람들이 두 개씩 가졌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금년 한 해는 하나뿐인 입보다도 두 개나 되는 눈과 귀를 더 많이 써보려고 한다. 그것만이 나 아닌 모든 이들과 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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