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심한 몸살을 앓았다. 앓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몸속의 모든 기관을 괴롭히던 찌꺼기들이 지금 이 아픔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을거라고.
그리고 몸살을 앓는것이 곧 치료이며 심하게 앓을수록 깨끗이 낫는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믿고 있었다.
살아가는 일에, 몸살 끝나듯 뚝 떨어지는 시간들이 있을까만 나는 한때 마흔살이 되면 꽤 괜찮은 인생을 살것이란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세상살이 몸살을 시작하던 30대초였던가. 나는어서 마흔이 되기를 바랐었다. 인생을 관조할줄 아는「불혹 (不或)의 40」이라는 말 그대로 40대는 내게 구원의 연대로 다가올줄 알았던 것이다.
당시 내눈에는 중년의 머리에 덮인 흰 눈꽃이 자랑스럽게 보였고 얼굴의 주름은 곧 삶의 깊이였으며, 여유있는 걸음걸이와 너그러운 말씨, 관대한 표정은 신뢰감의 표시처럼 느껴졌다. 나는 40대는 흔들리지 않는 의지와 강물같은 평화를 지니고 사는 그런 때인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40대를 사는 지금, 나는 어서 50이 오기를 또 기다리고 있다. 어리석게도 나는 10년씩 포장된 인생이 따로 있기나 한것처럼 엉뚱한 기대를 하며, 세월이 인간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간을 가치있게 변화시켜 나간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못하는 미망 (迷妄)의 연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온통 부끄러움 뿐인데도 아직껏 키보다 더 큰 욕망에 눌려 그 고통의 무게를 감당해 내지못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내삶은 몇발자국만 떨어져 바라보면 얼마나 안스러운 모습인지.
해야할 일 보다는 할수없는 일이 많아지고 앞날을 설계하기 보다는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40대는 나이만큼 몸과 마음이 굳어지고 타인과 부대끼기를 거부하는 완고함의 성을 쌓는 그런때가 아닌가 싶다.
내 옹졸함과 인색함마저도 남의 탓으로 돌리고, 편견과 가벼운 입놀림으로 타인에게 눈흘기고 상처를 주며, 내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더더욱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염치없는 40대가 바로 추루한 내 모습임을 알게 되는것은 사실 괴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방이 어둡고 권태와 무기력으로 탄력을 잃고 무너질때 누군가의 위로를 찾게 되지만, 단 한마디「아버지」소리가 입밖에 나와주지 않을때 또 그런순간이 거듭 나를 괴롭힐때 나는 40대가 더 고독해지고 더 참아 견뎌내지 않으면 안될 고통의 연대임을 알아야 했다. 그 고통의 동굴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 마음엔 살아온 날 만큼 덕지덕지 때가 끼어있고 납처럼 무거워진 영혼은 생기를 잃고 있어서 내 환상속에 40대는 처음부터 거짓이었으며 이제 내가 그 고통의 찌꺼기를 마시지 않으면 안될때가 된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것은 아마도 40대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한평생 수십번 수백번 몸살을 치르듯 우리는 순간 순간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상대로 싸워야하며 이제까지 나를 지탱해 오던 허영과 교만의 날개를 떼어내는 아픔을 겪도록 40대는 내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요즘 자주한다. 어쩌면 40대는 고단한 삶에서의 예배시간이며 자신을 정화하는 기도의 시간으로 주어진 보석 같은 연대인지 모른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은 인생이 순온하면서 내가 살기보다 나를 살리는 큰 사랑에 기대는 지혜를 터득할때 40대는 비로소 평화와 안식을 희망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자신에게 절망하기 전에 당신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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