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는 네가 알렸다」라는 원님 재판에서 보듯, 「자백을 증거의 왕」으로 삼던 우리 나라의 봉건왕조 시대부터 곤장으로 때리는 고문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784년 천주교 전래이후 100여년 동안의 박해 시기에도 포졸들에게 잡힌 신자들에겐 예외없이 고문이 가해졌다.
1600여년 전 5세기에 벌써 성 아우구스띠노 (354~430)는『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함에 있어서 저지르는 비극과 비애는 막대하다… 마침내 그들은 의심스러운 자들의 혐의에 관한 진실을 밝혀 내기 위해 고문을 가하는 것은 아무 잘못도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만일 그가 결백하다면, 그는 확실하지 않은 죄목으로 가장 확실한 형벌을 받는 셈이다…그보다 더 처참한 일은, 고문을 받은 끝에 아무 죄가 없으면서도 거짓 자백을 하고, 이 세상의 삶을 포기하여 죽음의 선고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고문의 속성이 어떤 것인가를 잘 지적하였다.
고문이란「범죄자 또는 피의자의 신체에 고통을 주어 자백을 강요하며 신문함」(동아 새국어사전)이란다. 고문의 뜻이 이러하기에 고문이 있는 곳에 반드시 조작이 따라오게 마련이고, 고문이 있는 곳에 뼈를 깎는 신음 소리와 함께 허위 날조, 그리고 민주에 역행하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칠 수 밖에 없으리라.
왜정 시대에 일본의 경찰과 군부는 식민 통치에 방해가 되는 애국 독립자사들을 합법적으로 고문하였음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런 일제의 경찰 밑에서 보고 배운 한국인 경찰은 해방 후 이 땅에서 사라지기는커녕 반공이라는 미명 아래 숨어들어 일제의 악독한 고문 방법을 전수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여기에다 과거에 써먹던 방법을 발전시켜 전기 고문, 성고문까지 개발하여 계속 야만적인 고문을 해오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고문의 수법도 여러가지이지만, 그 방법 또한 악랄하기 이를 데 없다.
※물고문-이 방법은 서울대 박종철씨가 숨진 뒤 고문의 대표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양한 방법의 물고문은, 칠성판에 눕힌채 수건을 얼굴에 덮고 큰 주전자로 물을 붓거나, 몸을 거꾸로 번쩍들어 욕조 속에 쳐박거나, 의자에 않힌 채 머리를 뒤로 젖혀 코에 물을 붓거나 고춧가루를 탄 물을 붓는 등 수 없이 많다.
※전기 고문-이 고문은 사람이 전기에 감전 됐을 때 느끼는 불쾌감과 고통을 최대한 이용하는 근대적인 고문으로, 고문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김근태씨의 폭로로 유명해졌다.
※성고문-인간의 부끄러움을 최대한 이용한 고문으로, 부천 경찰서의 문귀동에 의해 자행되었던 피해자 권인숙씨에 의해 널리 알려졌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발가벗겨 신체의 특정부분을 조롱하는 야만적인 고문 방법이다.
※구타-고문자들이 피의자를 연행했을 때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흔하게 쓰는 고문인데, 구타는 몸에 상처가 나기 때문에 초기에 그리고 간헐적으로 하며 여기서 보통 다른 고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잠 안재우기-잠을 자야만 하는 인간의 생리를 이용한 고문으로 모든 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당하는 고문이다. 2~3일 동안 잠을 못자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결국 고문자들이 원하는대로 진술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꼭 한 가지만 알리고 싶다. 10년 전 1982년「부산 미 문화원 방화 사건」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것이다.
1주일 동안 전 매스컴을 동원하여 우리 교회를 불온 집단의 온상으로 오해하도록 유도하면서, 최기식 신부를 마치 방화의 배후 인물 또는 좌경 의식화 교육의 주관자로 부각시켰던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면, 엄청난 고문의 결과였다.
방화를 교사했다는 김현장은 1982년 7월19일 소상하게 밝혔다. 『검찰의 기소장에 나오는대로 문부식(방화주범)을 두번 만나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방화를 교사한 일이 없다. 치안본부에 가보니, 문부식ㆍ김은숙과 관련된 조서를 만드는데 거기에 맞추는 과정에서 아무리 관련이 없다 해도 잠도 안재우고 구타하며 문부식과 같은 고문을 여섯번이나 당하고 보니, 매를 하도 많이 맞아 가슴이 흐느적거리고 그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어 그들이 시키는대로 방화를 교사했다고 시인 할 수 밖에 없었다』. 방화 주범인 문부식도 김현장으로부터 방화를 교사 받은 일없이 자기가 한 일이라고 누누이 증언했음은 물론이다.
6공화국 헌법 12주2항에는「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 당하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세계 인권 선언 제5조에도「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문을 받게 해서는 안되며, 잔인하고 비 인도적, 혹은 비열한 처우나 처벌을 받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합당한 법 절차 없이 사람을 체포하고 투옥하고 고문하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무서운 범죄이다」(1975년 성년반포에 즈음한 한국 주교단교서)
사실 6 ㆍ29선언은 박종철씨 고문 사망에 대한 국민의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고문 척결의 분명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이번에 법무부에서 준비하는「형법 개정시안」에도 인권 옹호나 고문 방지에 대한 내용이 일체 없다니 그 언제나 우리는 고문이 없는, 인간 존엄성이 법으로 철저하게 보호받는 사회에서 살게될까. 14대 국회에서 신자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고문 폐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꼭 마련해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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