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흔히 말하는 맞벌이 부부다. 하루종일 집을 비우기 때문에 때 맞추어 해야 할 집안 일이 밀리고 밀려 주말에는 갖가지 일들이 수북히 쌓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맞벌이 아닌 부부를 부러워 한적이 한두번 아니다. 그럴 때마다「나도 아내의 일손을 좀 거들어줘야 하겠다」고 마음 먹지만, 생각으로만 머물뿐 좀처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또 아무리 남녀평등이라 해도 한 가정에서 만은 하느님께서 결정하신 남녀 성별에 따른 고유영역이 지켜져야 한다는 고루한(?) 내 소신 때문인것 같다.
어느 일요일 아침 식사 때의 일이다.
『요사이 부엌일 하는 남편들이 많은가 봅니다』
아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은근히 운을 때니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딸아이가 슬쩍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우리친구 부모도 맞벌이인데요, 어머니가 바쁠때엔 아버지가 직접 밥을 짓기도 하나 봐요』
이건 직접 들어내어 놓고 하는 얘기보다 더한 협박(?)이다. 두 여자가 사전에 짠 각본임에 틀림없어졌다. 2대1의 열세. 다 수결의 원칙을 내세우며 밀어붙이면 앞으로 일단 유사시 꼼짝없이 내가 밥을 해야 할 판이다. 상황이 다급해 질 수 밖에. 역전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가부동수로 나가야 현상유지가 될텐데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나는 부리나케 아들 방으로 가서 아직도 늦잠에 취해 있는 아들을 억지로 깨워 식탁에 앉히고선 유도성 질문을 던졌다.
『승진아, 넌 아버지가 부엌에서 직접 밥짓는 거 찬성하지 않겠지, 그렇지?』
『아버지도 참, 그것 때문에 잠깨웠어요? 어머니가 바쁘실 땐 아버지도 한번쯤 밥을 지어보세요.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잖아요?』
이쯤 되면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다. 이녀석 같은 남자라고 믿었는데 궁지에 몰린 내편을 안들어주다니 순간 서운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이놈아 너나 장가 가거든 부엌일 실컷 해라 난 부엌일은 못해!』
난 먹던 식사를 일부러 중단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아내의 다감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와 귓전을 때린다.
『여보, 부엌일 안해도 좋으니 밥이나 마저 잡수세요』
뭐니 뭐니 해도 남편에게는 자식들보다 역시 마누라가 최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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