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람들은 많은 이웃들이 말라리아와 전쟁으로 목숨을 잃게 되면 일주일 안으로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인사차 찾아간다. 그 길은 언제나 맨발로 걸어서 두세 시간이 걸려도 배가 고픈 처지에서도 그들은 꼭 해야 할 도리처럼 반드시 찾아간다. 이들은 가난하고 어려워도 몸에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때로는 아주 적은 1백 원짜리 선물을 받고도 마당을 빙빙 돌아가며 춤을 추고 감사를 표시한다. 장례미사 후 시신을 앞세우고 뒤따라가며 그들의 고유한 땀땀(북소리)이에 맞춰 노래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람이 죽으면 슬픈데 왜 춤을 추느냐고 물었더니 부활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들은 가진 것이 없고 땅에서는 기대할게 없으니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듯이 주일은 말할 것도 없이 매일미사까지 성당 안을 꽉 메운다. 모두 두세 시간을 걸어서 배가 고파 기운이 없지만 이렇게 이들의 신앙은 열렬했다. 어떤 때는 신자가 성당에 안 보여 방문하니 배가 고파서 또 옷이 없어서 못 나갔다고 한다. 가난은 나라도 못 막는다고 하지만 선교사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 애가 타 죽을 지경이였다.
드디어 나는 그들을 필름 속에 담기 시작했다. 가난하면서도 사랑하고 웃으며 기뻐하는 그들의 인간애를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촬영한 사람들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고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가 촬영한 사진보다 더욱 비참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실제의 삶은 휠씬 더 황폐하다. 그러나 내 사진을 보고는 『이 사람들은 옷도 잘 입고 살도 찌고 부자다.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 난 가슴이 아프다. 사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가난했고 불행했다. 그러나 배고파 또 병들어 누워있는 그 얼굴에 파리가 달라붙어 있는 비참한 모습, 파리를 쫓을 수 없을 만큼 마치 죽은 것 같은 그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파리를 쫓아야 했고 먼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또 입을 것을 주어야 했는데 나는 빈손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안 그래도 고통스런 그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삶을 부끄럽게 하고 괴롭히는 것 같아서였다. 내가, 아니 우리들이 나누지 못해 대신 고통받고 있는 그들에 대한 죄책감과 송구스러움이 마음으로 부터 촬영할 수 없게 만들었었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면적 27만4천㎢(한반도의 1.2배)로 8백7십7만명 인구에 원시 토착 신앙인이 69%, 회교 7%, 카톨릭이 4% 정도이다.
그 나라 땅은 넓지만 연평균 기온이 27°C로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의 부족으로 남부지방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가 있다. 이곳의 더위는 너무 심해서 더위와 물부족, 질병, 특히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들이 많다. 1년에 6~9월까지 우기라지만 건조기인 10~4월까지 7개월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다가 이때에 한 달에 한번 비가와도 아무 소용이 없는 형편이고 비가 많이 온다 해도 1주일에 한번 정도, 장마철인 7~8월에는 2~3일에 한번 20-30분 내리면 그만이다. 나는 아프리카의 이런 메마른 현장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더위와 모기떼가 덤벼들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사진촬영은 생각조차 나지를 않았다.
내가 있던 곳은 수도 와가두구에 위치한 수도원이었는데 얇은 시멘트 벽돌과 양철지붕으로 된 그 나라에서는 최신식 건물이었으나 해가 떴다하면 차츰차츰 우리나라의 온돌방에 불을 때는 것 같이 뜨거워졌고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여서 어디 한곳 숨을 편히 쉴 곳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고 견딜 수가 없어서 프랑스로 돌아갈 비행기 예약한 날까지 무사할지 걱정이었다. 내가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꾸었던 것이 얼마나 허영이었던가를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비가 내릴 때는 옆에서 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요란해서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이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았고 온 도시와 마을은 물천지지만 20~30분후 비가 그치기만 하면 즉시 땡볕이다. 물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모든 오물을 다 쓸어가 버려 한 동안은 깨끗했다. 비가 그치면 어디를 가나 차바퀴가 빠지지 않는 단단한 땅이 되어 버린다.
이 나라 사람들은 비가와도 우산을 쓰지 않을 만큼 비를 귀하게 여긴다. 이들은 비가 오면 밖으로 나와 춤을 추며 비를 맞고 다닌다. 비를 맞으면 자연히 목욕도 되고 빨래도 되는 것이다. 한번은 여행중에 비가 내리는데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란다.
우산이 없어서 못 내린다 하니까 『비는 단지 물일뿐 인데 왜 너는 그 비를 무서워하느냐』고 말하기에 비가 억수로 내리니 내 옷이 다 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방 마른다고 비가 이때밖에 내리지 않는데 왜 이 귀한 비를 가리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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