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평화, 절제, 회개하는 마음은 건강을 가져다주고 탐욕, 증오, 비관, 불의 등은 혈액을 산성화시켜 갖가지 병을 유발시킨다』
건강에 관한 글을 읽다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친 부분이다.
다가올 운명을! 아니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 꿈 자락(판)을 붙들고 지나온 밤을 뒤집고 흔들고 털어야 아침을 맞는 습관으로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얼른, 벌떡 일어나!』를 수 없이 복창시켜 드렸던 내가 운전중에 몇 차례 토했다고, 복부가 계속 더부룩하다고 얼른 벌떡 일어나서 병원으로 달려갔을 리 만무하다.
이 책 저 책 자가 처방전을 기웃거리고 있을 무렵, 고령의 친정아버지께서 위절제 수술을 받으셨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수술후 오랜시간 고통 중에 계신 아버지를 뵈면서 우리 모두는 공연한 결정을 내렸던 게 아닌가! 반신반의 하며 서로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 역시나 십여 년 전에 받았던 갑상선 수술의 공포가 아직도 뇌리에 선한데….
며칠 새 쑥 들어간 눈을 보며 얼마 후 해외로 나가는 남편 때문에 조바심하는 거라던 친구들은 나를 병원에 집어넣을 궁리들을 했다.
단식, 수마(수산화 마그네슘) 등에 관한 글을 외다시피 하며 숙변배제에 관심을 쏟던 때라 떠나는 남편의 가방에도 「수마」를 챙겨넣었다.
『단식은 성공만 한다면, 만병통치의 비법이다』라는 글귀에 사로잡혀 뒤죽박죽이긴 했지만 죽도 먹고 미음도 마시며 굶기도 해보고 보름정도를 지나보았다.
몸은 수척해갔지만 정신은 상쾌해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기도, 새벽미사 참례, 지켜야 할 몇 가지에 신경을 쓰며 시작된 단식은 불과 4일을 고비로 명현반응(瞑眩反應)앞에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증상(症狀)을 곧 요법(療法)이라 했는데!
동지섣달 긴긴밤 하얀눈을 맞으며 『메밀묵 사려』울먹이는 듯 얼어붙은 골목어귀를 맴돌아 울리는 그 외침은 내 잠자던 식욕마저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진간장에 깨소금, 마늘, 파, 갖은양념 버무려 미나리 오이까지 곁들이면 한 접시 홀랑 다 비워도 좋을 것 같은 식욕이 혀로 코로 목구멍을 타고 온 몸을 어지럽혔다.
어느새 나는 큰 아이를 부르며 저 메밀묵 장수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허기진 팔을 내 둘렀다.
『단식은 양날가진 칼이다』란 말을 여러 어른들의 염려전화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터라 헤프닝은 곧 끝이나고 운명이라던가? 정신을 어지럽혔다. 소문난 음식점의 갖가지 음식들이 허기진 눈앞에 다투어 차려 지고….
풀석, 주저앉은 내 의지는 결국 탐욕의 늪으로 추락해버렸다.
남편이 걱정스레 전화를 해오면 잘 해낼 수 있다고 큰 소리 땅땅 쳤는데!
하느님께서 뱉어버리고 싶은 미지근한 자였기에 이런 시험에 들게 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동안을 파김치가 된 채 아득한 터널을 헤매었다.
창 아래 하얀눈이 소복히 쌓이던 그날 나는 그 하얀눈을 바라보며 『괜찮아?』라고 묻고 있는 남편의 전화에다 모기만한 소리로『나, 다 나은 것 같애. 내일부터 미음 먹을거야』라며 울먹이고 말았다.
어느덧 두 번째 미음을 앞에 두고 맥을 놓고 앉았다. 아마도 하느님께 돌려 드릴 공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리라.
『하느님! 죄송합니다. 꿈자락만 털다 놓쳐버린 무수한 세월의 끈을 끊고 이젠 「벌떡」일어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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