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같은 신문지면에 그것도 나란히 게재된 두 종류의 기사는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부모의 병수발을 위해 혼기마저 놓친 30세 노처녀의 효행을 기리는 효행대상 시상식과 하루 용돈 2백만 원 이상씩을 물 쓰듯 한다는 이른바 오렌지족의 히로뽕 흡입사건. 개성과 다양함이 공조하는 사회이긴 하지만 마음 저 밑바닥으로부터 스며나오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가 없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희망이라는 두 글자로 조각해 나갈 수가 있는가.
한국의 강남, 압구정동은 이제 일본의 주간지에까지 등장함으로써 환락에 관한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오렌지족 역시 한국을 모태로 탄생한 이 시대의 새로운 종족으로 그 이름이 등장했다. 누가 알겠는가.
한국의 오렌지족이 60년대 미국의 「히피」와 같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집단으로 성장해 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긍정적 의미에서라면 그리 나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소위 오렌지족이라는 부류가 뿌리고 있는 한심한 작태에 있다. 그들이 선택한 삶의 행패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것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 그들의 삶의 형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직하고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오직 좌절과 분노만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놀라움은 결국 히로뽕이라는 최악의 수단이 벌써 이들에게 접근해 있다는 사실이다. 철학도 사고도 목적도 없이,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들의 최후 선택이 히로뽕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예견이 됐어야 옳을 일이다. 오렌지족이라는 희한한 단어가 등장했을 때 사회는 사회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이들의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 결단이 어떤 형태이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당하게 땀흘려 노동하는 것이 소위 「쪼다」같은 행위로 분류가 되고 있는 이 마당이 아닌가.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보편적 행위가 보람을 안겨주기는커녕 오히려 조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두려움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은 어두운 미래,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바로 옆 지면을 채우고 있는 박명애양의 효행내용은 미로같은 어두움 속에서 한줄기 섬광처럼 우리의 시야를 밝게 해준다. 삼성문화재단이 올해의 효행대상 수상자로 그녀를 선정한 이유는 그녀의 효행내용이 그대로 입증해 보여준다. 20년간 이어진 아버지의 병치레와 5년전부터 겹친 어머니의 간병을 묵묵히 해낸 그녀는 어쩌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우리네 속담을 무색케 하는 것만 같다.
물론 우리네의 가장 큰 덕목으로 뿌리내려온 효행이 시상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어색한 노릇이긴 하다. 「마땅한 행위」에 대한 포상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특히 수족이 불편한 부모의 손발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상 언제나 윗자리를 차지한 덕목이었다. 당연한 덕목을 수행했다고 상을 주어야 하는 현실은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고리타분한 일로 치부가 될지도 모르는 효행에 대한 관심과 격려는 바닥끝까지 무너져 내린 우리 가정과 사회의 도덕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가정에서부터 잃은 도덕심과 질서를 가정에서부터 찾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도 든다. 자기의 이익이 우선하고 그 이익을 보장 받기 위해서라면 불의조차 뒤따라가는 우리의 슬픈 현실은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부전자전론(父傳子傳論)이다. 오렌지족의 등장도 따지고 보면 가정에서 그 근원을 찾는 것이 순서다. 그리 말하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모도 틀림없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부모의 경우도 재화의 남용과 그 남용을 방관한 잘못은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 스스로 자기의 종아리를 때리던 선조들의 후예가 아닌가.
제대로 된 자녀는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부모의 말과 행동거지, 그들의 삶의 태도는 아이들의 첫번째 모델이 된다. 한국땅 강남의 오렌지족이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은 아버지 어머니 오렌지족들로부터 그들의 행동을 대물림해 받았음이 틀림이 없다.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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