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생활 속에서 9년을 보내고 1981년을 맞이했다. 이제 내 나이 스물! 힘이 넘치는 튼튼한 젊은이로 성장했기 때문에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혼자몸 살아가는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한사발 물로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고, 짚덤불속에 웅크린채 추위를 이겨내야 했던 겨울의 긴터널을 숨가쁘게 빠져나와 내 인생을 꽃피울 수 있는 봄에 문턱으로 들어선것이었다. 아, 그런데 또다시 이렇게 엄청난 시련이 주어지나다니….
그토록 건강하고 자유롭던 내가 이제는 영영 회복 불가능한 몸으로 0.5평 침상 위에 누워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앞다투어 받아먹는 제비새끼처럼 하루 세끼 간호사가 떠넣어 주는 희멀건 죽을 짜면 짠대로, 또 싱거우면 싱거운대로 맛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넓죽넓죽 받아먹으며 죽는 날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말인다!
반가운 친구가 찾아와도 따뜻한 악수 한 번 나눌수 없는 마비된 손, 얼굴에 달라붙는 파리 한 마리 쫓을 기력없는 몸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이렇게 존재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것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고, 꿈이었으면 싶은 현실이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살다보면 좋은 날이 있으리라는 본능적인 생각밖에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그동안의 삶, 그러나 이제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바뀌는 착찹한 순간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비참한 몰골로 시들어가는 육신의 고통과 절망의 먹구름에 휩싸인 정신적인 괴로움으로 마음은 깊이 병들어갔고, 오직 죽음만이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줄 유일한 해결책이란 생각은 했으나, 정신이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인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삶, 운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다. 사고 당시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저 무서운 악몽이었다. 미칠것만 같았다. 아니 미쳐가고 있었다.
극도로 날카로워진 신경은 치료를 하러 오는 의사와 치료를 하러 오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차라리 죽여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고, 성질에 못이겨 내 손가락을 뼈가 으스러지도록 물어뜯기도 했다. 눈물에 젖은 베개는 잠시도 마를 사이없이 항상 축축했고, 나중에는 그나마 눈물도 말랐는지 메이는 목으로 가슴울음을 울어야 했다.
그러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간호사와 친구들, 그리고 그밖의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모든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용기있게 받아들여라』 『희망은 살다보면 생기는 것이니 힘을 내라』등등 여러 좋은 말로써 위로와 충고를 해주었으나,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에게 그런 상투적인 위로나 충고는 오히려 위로나 충고는 오히려 더 큰 괴로움만 부채질할 뿐이였다. 『그 어느 누가 나의 아픔, 나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이 값싼 동정심으로 나를 위로한답시고 온갖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으면 『용기, 희망, 그런건 당신들이나 많이 갖고 잘들 사시오. 손발이 자유로운 당신들이 어찌 나의 아픔, 나의 괴로움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해할 수 있단 말이오. 당신들이 내 처지가 됐다면 아마 당신들은 지금의 나보다 더 절망하고 괴로워했을 것이오. 그러니 제발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들가시오!』하는 말로서 그들의 입을 침묵케 만들었다.
정말이지 본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불행이 닥쳐 큰 충격을 받았을때 오고가며 한마디씩 흘리는 상투적인 위로나 충고는 그에게 전혀 위로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자살」이란 단어를 떠올릴만큼 최악의 상태에선 사랑하는 사람의 정다운 미소도 비웃음으로 보일 수 있고, 정다운 친구의 우정어린 충고나 위로조차도 값싼 동정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많은 생각을 통하여 자신을 굳건히 정립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갖출 때까지 끊임없는 관심속에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진정그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창 밖의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에 간호사가 체온과 혈압 등을 체크해가는 것으로부터 하루가 시작되어 우루루 몰려왔다 몰려가는 의사들의 회진이 있고나면, 처방된 결과에 따라 주사맞고 약먹고 치료받고, 온갖 걱정과 한숨을 쏟아놓고 돌아가는 면회객들의 바쁜 발걸음소리를 끝으로 하루가 저무는 병상생활.
세상이 좁다고 한창 뛰고 날 새파랗게 젊은놈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의 몸으로 0.5평 침상 위에 꼼짝 못하고 누워 철저한 고독과 침묵속에 끝없는 절망의 악몽같은 시간을 죽인다는 것. 세상에 이보다 더 큰 고역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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