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5일자 서울 주보에 노순자 (젬마) 자매의「미사보 유감」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 자매님은 소설가로서, 시내에 나갔다가 근방 성당을 가게되었는데 미사보 없이 성체를 모시러 나갔다가 신부님의 눈총 (?) 을 받은 듯하다.
다음 구절이 괜히 마음에 거슬린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도 미사보에 대한 반성은 되지 않았다』, 『미사보 착용이 거부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미사보는 여성 경시의 인습을 교회제도 안에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여성이 종속적 존재 아닌 인격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같은 맥락의 수녀님들 머리 수건까지 거부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또『남성 중심 문화가 5천년을 이어져 왔고 성서 배경도 같고, 성서 기록자들이 남성이었음을 기억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썼다.
미사보를 쓴 여성들 대부분이 기쁨을 느낀다고 보아온 본인은 혹 어떤 자매님이 굴육으로 느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미사란 교회가 하느님께 바치는 흠숭의 극치로 가장 큰 기도이며 제사이다. 거룩한 성체를 인간의 몸과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
영혼은 성체성사나 고백성사의 은총상태에 있어야 하고 마음으로는 진솔하고 열심히 주님을 생각하고, 육신적으로는 한시간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않는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고 배워 실천하고있다.
유독 여성만이 미사보를 쓰고 미사에 참여하라는 법(?)이 있느냐고 항변하는 젬마 자매의 사상은 자유다. 그러나 미사보를 얹었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보다 차별 받는다는 의식은 별난 주장이라고 보아진다.
성체를 모시고 제자리에 돌아와 섯거나 혹은 않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천주께 감사 드리는 자매님들의 미사보에 가려진 얼굴을 보면서 그때마다 아름답고 성스러움을 느끼던 나를 포함한 대부분 신자들의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미사보 때문에 성체를 어렵게 모신 후 조금은 마음이 흔들린다. 문제가 미사보에 있지않음을 알면서도』 라는 구절은 나의 지식이나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뭐라고 하는지 의문시된다.
『엇그제 서품받은 새신부님들께 희망을 심으며 언제나 예민하게 시대의 징표를 읽어 주실 것을, 계속 공부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하면서 끝을 맺었는데 미사보와, 새신부님들과, 시대의 징표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시 된다.
훌륭한 웅변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경우라고 느낀다. 글이 난해라고 심한 비약을 느껴 거부감 마저 드는 것이 나의 무지탓인가? 자괴심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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