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고통과 정신적인 괴로움속에 의미없는 시간은 흐르고 흘러 겨울이 왔고, 창 밖에는 목화송이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다.
음울한 마음으로 탐스럽게 내리는 창 밖의 눈을 바라보다가 눈물 고인 흐린 시선을 병실 천정으로 옮기니 링게르병에서 투명한 주식액이 한방을 한방울씩 낙수물 지듯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때 한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는데, 그것은 ? 태평양전쟁 말기 연합군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던 일본군이 부상당한 조선인 노무자와 학도병을 공기주사를 놓아 살해하는-언젠가 읽은 책의 가슴 아픈 내용이었다.
혈관에 공기를 불어넣으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팔에 꼽힌 링게르줄을 끌어당겨 송곳니로 줄을 끊었다. 그리고 심호흡과 함께 줄에 막 공기를 불어넣는 순「이게 무슨 짓이에요!」하는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언제들어왔는지 간호사가 내 입에서 링게르줄을 급히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옆침대의 잠이 든 환자밖에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일을 저질렀는데 5분만, 아니 1분만 더 시간을 주지 않고 하필이면 바로 그때 주사를 놓으러 들어올게 뭔가….
죽음 조차도 이 가련한 인간에겐 등을 돌린 모양이었다. 죽음으로써 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될수 있으리란 단 하나의 희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고, 이제 더이상 죽음을 쫓아 발버둥 칠 기력도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하루는 가톨릭 맹인선교회에서 나왔다고 자신들의 소개를 밝힌 맹인 몇분이 찾아오셨다. 그분들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굳게 닫힌 내 입을 열어보려 하였으나, 모든것이 다 귀찮은 나는 한마디의 답변도 하지 않은채 어서 빨리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한 내 심중을 읽으셨는지 그분들은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으셨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채 무거워 보이는 걸음을 옮겨 병실을 나가셨다. 그 후로 가톨릭 맹인선교회 여러분들께서 일주일에 한번씩 내 병실을 방문하셨다. 그러나 오든지 가든지 내겐 관심밖의 일이었다. 불쌍한 인간 동정하러 오는 것같아 누가 찾아오는 것이 싫었고, 귀가 따갑도록 듣고 흘려온「용기」 「희망」이란 단어에 누가 말을 시키는 것이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마음의 괴로움은 나날이 가중되어 깊은 수렁속에서 나를 몸부림치게 했고, 합병증으로 두번의 수술을 더 받았으나 차도없는 몸은 더욱 악회되어 가는 가운데 몸으로 느낄수 없는 계절은 바뀌고 또 바뀌어 병원에 입원한지 1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처음 병실을 방문한 이후 일주일에 한번씩 내 쓸쓸한 병실을 찾아주신 가톨릭 맹인선교회 여러분들의 방문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불편한 몸 어려운 걸음임에도 불구하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 날자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병실 문을 노크하시는 그분들의 인내와 정성앞에 처음의 냉랭했던 태도와는 달리 나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며칠씩 굶어본 사람만이 배고픈 사람의 참 심정을 알 수 있고 엄청난 시련의 아픔 속에서 갈길을 잃고 방황해 본 사람만이 진정 괴로운 사람의 아픈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듯이 그분들은 나보다 앞서 지금 내가 겪고있는 이 모든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신 분들이셨음에 나의 아픈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셨으리라. 그래서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너무 성급하지 않았고 한마디 말이라도 너무 쉽게 하지 않으셨으며 끊임없는 관심속에 조용히 지켜보며 굳게닫힌 마음의 문을 내스스로 열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이 좋은 광명천지에 암흑속을 살아가야 하는 그분들의 갑갑한 심정, 세상이 좁다고 한창 뛰고, 날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0.5평 침상 위에 꼼짝 못하고 누워지내야 하는 답답한 심정, 서로의 마음에 뭔가 통하는 면이 있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분들은 값싼 동정심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나의 괴로움을 이해 하시고 나누려 하셨다. 선교회 여러분들께서 방문하시는 날은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러놓고 모처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잛은 면회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분들이 떠나실 때는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의 삶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으며, 왜 살아야 하는 것이고, 올바르고 값진 삶은 과연 어떠한 삶인가?」등등 많은 숙제를 남겨놓고 가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 모든 문제들「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고, 내 삶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었으며, 왜 살아왔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또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등등을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우리 영혼의 아버지신 하느님을 알아 그분을 공경하라」는 인간의 첫번째 삶의 목적도 모른채 살아온 내 삶의 헛됨과, 주어진 생이 힘들고 괴롭다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내 스스로 끊으려 하였음을 깊이 반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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