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당신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당신의 편지에선 향기가 납니다. 오랫동안 맡지 못했던 향기입니다
어디에선가 전해오는 향기 그향기 때문에 새벽을 기다리며 우리는 어둠의 문을 자주 밀어보는게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하신 애꾸눈 임금님의 이야기를 잘알 것도 같습니다. 한 임금님이 있었다지요. 그 임금님은 전쟁 중에 화살을 맞고 한쪽 눈이 애꾸가 되었는데 어느 날 초상화를 남기고 싶은 욕망을 갖게되어 그 나라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고 소문난 화가를 초빙했지요.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보았을 때 임금님은 화가 날대로 났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얼굴이 너무 못생겼다는 사실을, 말하자면 그 그림이 확인시켜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눈은 애꾸였고, 주름살투성이에 뺨은 축 늘어진 모습. 화가난 임금님은 그 화가를 투옥하고 이윽고 사형기켰습니다. 그리고는 당연히 다른 화가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화가는 첫번째 화가의 불운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임금님을 그렸습니다. 되도록 잘생긴 임금님으로 말입니다 물론 눈도 애꾸로 보이지 않게 정성껏 미화했습니다.
그러나 완성된 그림을 보자 임금님은 또다시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초상속의 얼굴은 너무 잘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얼굴을 잘았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미화한 화가의 노골적인 아첨의 소행을 참을 수 없었던거지요 그 화가 역시 투옥되었고, 이윽고 사형당했습니다.
당신의 질문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임금님의 얼굴을 그려야 사형당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거짓을 그리는 것도 아닐 수 있을까?
어떻게 리얼리즘을 실현하면서도 임금님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 것인가.
당신의 편지는 계속 묻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하는 대답을 유도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런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지혜라고 말하기 전에 유연성 또는 포용성이라는 어휘로써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그런 유연성과 포용성으로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닐런지요?
가령 임금님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는 식의 파멸적 대응이 아니라, 임금님의 옆얼굴을 그린다든가, 젊은 시절의 임금님 모습을 그린다든가, 눈을 내리뜨고 독서하는 임금님의 모습을 그리는등 그 유연성또는 포용성의 대응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편지에서 오랫만에 맡아보는 향기, 고독의 향기입니다. 고독이 우리를 밀며 새벽을 열라고 재촉하고 있습니다. 새벽은 우리의 것입니다. 당신이 보낸 새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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