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맹모의 삼천지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라는 고민은 늘 어른들의 몫이기 마련이다.
현대의 산업 발전이 인간생활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거나 혹은 교육에 있어서 그 내용의 변화를 가져왔다 라는 호기도 실은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한 인간으로 존재하도록 가르치는 그야말로 가장 기초적인 일-우리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앞에서는 결코 떳떳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파급된 수많은 정신적, 도덕적 가치의 상실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가치의 혼란 속에서도 교육의 참다운 의미를 간과할 수는 없다. 어쩌면 진정한 교육이란 우리의 관념 속에 차지하고 있는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며 본질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회의론자가 있어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아이들은 영양분을 공급 받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고 고른 성장을 위해 뛰놀며 자신만의 고유한 감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떠한 강요나 제재도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 속에서 스스로 규율과 사회성을 터득하며 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얻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한 그들만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만이 어른들의 몫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고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 살아가도록 이끈 위대한 조각가의 의지에 부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가 교사였다면 더욱이『교육이 곧 입시』라는 이 땅의 풍토 아래 섰던 교육자라면 그는 온갖 위협과 압력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를 강요 당했을 것이며 혹은 미친 자의 소리로 치부되거나 현실을 망각한 이상주의자로 몰려 종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던 교육의 제도 속에 매장될 것이다. 만일 그가 그러한 온갖 탄압을 두려워했다면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였을지도 모르겠다.
『단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과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뛰어난 스승이요 모범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의 사람들과 그의 제자들까지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그는 분명히 보았고, 또 그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를 그리스도는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 동정 어린 부드러움과 신뢰 어린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선사했고 그의 순수성과 탁월한 통찰력에 사람들은 감복했다. 그는 존재의 궁극적인 의미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며 그 시대의 형식 위에 창조자의 본질을 부여했다. 결코 현실과 유리된 이상을 설명하지 않았고 또 이상을 위해 현실을 포기하라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늘의 교회가 가르쳐야 할 교육의 자세를 이미 그리스도는 그의 시대에 말하고 있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배우는 일에 너무도 지쳐 있다. 성적이라는 강박관념 속에 시달리며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경멸을 느끼기도 한다. 간혹 어떤 아이들은 그러한 고민 속에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입시라는 문제가 곧 지고의 가치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아이들에게 교회는 성적 이외의 세상, 입시 이외의 세상에 대해 말할 필요를 가져야 한다. 단순히 머리를 식힌다든가 학교에서, 혹은 부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푼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감성을 성장시킨다거나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사고에 젖어 본다거나 인간관계에 대해 체험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거나 하는 식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교회는 가르쳐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성사생활을 위한 교리도 중요하지만 실상 사람을 사이에서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실존적 가르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이상 전인적인 교육을 학교제도에만 떠맡겨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부단한 노력 중에도 성적과 입시라는 현실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러한 예측은 이미 교회 교육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진적인 교회의 노력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첫 걸음일 수도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청소년을 위한 가톨릭문화운동은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이미 교회 안에서 여러 형태로 진행되어 온 문화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이들의 지도를 담당할 교사의 자질과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적극적인 교사 유치와 지도자 양성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활성화된 교사단을 구성하고 이들의 교육을 자연스럽게 부추겨야 한다.
교육을 위한 교회의 새로운 노력. 이제는 더 이상의 계획이나 구상보다는 움직여야 할 시기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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