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여름의 절정을 향해 높은 열기를 내뿜으며 달려가고 있다. 연일 30도 안팎이 되는 더위의 계속이다. 가마솥 더위, 찜통 더위가 이보다 더할까? 열화같이 내리쬐는 햇볕에 가로수 잎새가 숨을 죽이고 축 늘어져 있고, 제철을 만난 듯 살살거리던 견공(犬公) 들도 더위를 먹고 침을 흘리며 씩씩거린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바깥에 나가면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아스팔트의 복사열이 직사광선보다 더 덥게 느껴진다. 해마다 여름은 불볕더위로만 우리곁을 찾아오는가?
그러나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의 낭만이 있다. 계절에 민감한 사람들은 벌써 피서다 바캉스다 해서 산과 바다의 낭만을 찾아 나선다. 음악처럼 파도의 율동이 출렁거리는 바다, 산모퉁이를 굽이굽이 돌아 계곡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자연은 언제나 사람들을 반긴다. 그 자연속에서 물에 뛰어들고 그림자에 의지하여 더위를 씻으면 마음은 속세를 떠나 있다.
여기서 생각나는데 옛 어른들의 피서법이다. 햇볕이 땅을 녹일듯이 내리쬐는 오후가 되면 옛 어른들은 우물가로 가서 웃통을 벗어 던지고 우물물을 몇 바가지 끼얹는다. 온몸에 번지는 차거운 기운이 얼음보다 더 차다. 그리고선 하얀 모시바지 저고리차림으로 갈아입고 우물에 담구어 둔 단술을 꺼내어 한 잔 쭉 들이키면 오장육부가 차다 못해 시려온다. 그 시려움을 간직한채 뒷편 마루에 목침을 베고 누어 춘향전이며 홍길동전을 읽노라며 감나무 위에서는 매미소리 맴맴 쏟아져내리고, 때마침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모시올 사이로 넘나들며 살갗을 가볍게 간질어준다.
밤이 되어 모기장 안에서 죽부인을 껴안고 잠을 청하면 창문을 비껴들어 온 달빛이 온몸을 이리저리 어루만진다. 옛 선인들은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함으로써 더위를 잊었다.
그들에는 피서계획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피서요 피서가 곧 생활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비해 요즈음의 피서는 너무 사치스럽고 요란할 뿐 아니라 에어콘, 룸쿨러같은 인공의 바람과 인위적인 차거움에 너무 의존하는 것 것 같다. 이는 자연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거역이요, 자연에 대한 동화가 아니라 반란이 아니겠는가?
이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자연에 합일 (合一) 하는 선인들의 지혜를 생각해 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