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에 의하면 뒤늦게 성모님의 무덤에 당도한 도마 사도와 일행은 다만 장미꽃으로 가득한 빈 무덤만을 보았다. 아들 예수님의 구속 사업에 피와 땀과 눈물로 동참하신 성모님이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 승천 대축일. 이 축일에 우리는 피와 땀과 눈물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태중의 아기가 살려면 엄마가 죽고, 엄마가 살려면 아기가 죽어야 하는 극한 상황에 놓인 어머니. 아기를 낳는 것은 곧 산모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도 그 어머니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머니를 위한 치료중에 발생하는 아이의 희생이 허용되는데도 말이다. 아이를 출산한 후 그 어머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기가 크면 이 엄마가 자신보다도 더 아기를 사랑했다고 전해주세요』.
생명에 대한 애착, 이는 얼마나 크고 기본적인 애착인가? 누구에게나 귀중하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인데 그 어머니는 자신보다도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고백을 남긴 것이다.
「태어날 아이 때문에 새활이 불편할까봐」혹은「장래가 지장이 있을까봐」등의 이유로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사람들은 무슨 말을 아이들에게 남기려는 것일까? 턱을 치켜들고『태어난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 낙태하는 것은 당연할 일 아니예요?』라며 내뱉는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미 태어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부모나 연인, 폭력배나 근친 그리고 사회의 잘못인데 그 허물을 가장 힘없는 태아에게 다 지우려는 사람들을 아이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
이미 작고하신 어느 신부님의 이야기이다. 산모의 건강이 심히 위험하니 아기를 인공유산시켜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교우가 답답한 심정으로 고해소에 계시는 신부님을 찾았다. 그 교우의 딱한 사정을 들은후에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 죽어야지. 아이를 낙태시키고 좀더 살다가 지옥에 가느니 아이를 낳다가 죽어서 천당에 가는게 낫지!』그 말씀이 어찌나 서럽게 들리던지 집으로 돌아온 후에 많이도 울었단다. 아마 당연히, 「어찌 그렇게도 인정이 없을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원망스럽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님의 기도, 그렇다. 그분이 성당 성체앞에서 얼마나 자주 기도하시는지 그 본당 신자들은 너무도 잘 안다. 일주일 후 그 교우는 이렇게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 아기를 낳자, 아기를 낳다가 죽게 되면 죽자!』후일 귀여운 아들이 태어났고, 오래전부터 지병이 있어 고생해오던 산모는 죽지 않고 오히려 더 건강하게 되었다.
신앙인은「죽으려 하는 자는 살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체험해가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되풀이 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도와 희생, 그리고 눈물과 땀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는 낙태왕국 소리를 듣고 있는가? 생명경시 풍조가 날로 심해지는 우리 나라에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피와 땀과 눈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모, 교육자, 의료인, 기업인, 종교인 그리고 정치가들이 피와 땀과 눈물 대신에 돈과 명예와 쾌락을 택하였기 때문이라고. 이기심, 이 이기심이 태아의 생명권마저 빼앗고 있는 것이다.
왜 들을 수 없는 것일까?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태아들이 온몸으로 부르짖는 절규들이다.『외사선생님, 날 죽이지 말아 주세요!』『정치하는 아저씨들 제 생명권을 보호해 주세요』이 사회는 왜 이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며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무릇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못듣고 보아도 못 본다고 했다. 왜 마음이 없어졌을까? 하느님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아니, 자신을 죽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다. 『낙태는 참으로 끔찍한 것. 이는 단순히 태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태아 속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렇다 낙태는 아기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낙태시키는 사람을 위한 무덤을 뜻하기도 한다. 노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단단하다』.
중요한 것은 다시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 비록 한때의 잘못으로 하느님을 거역하였다 하더라도 침묵을 줄 아는 사람, 고개 숙여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사람은 다시 태아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엄마, 아빠, 이미 저는 다 용서했어요. 앞으로는 태아들을 사랑해주세요.』
성모승천대축일 복음 말씀에서 엘리사벳은 기쁨으로 환호하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아드님 도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다음의 귀절을 좀더 주의 깊게 들어보자.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이 환호는 바로 우리의 환호가 되어야 한다. 태중의 아기들이 기뻐 뛰놀도록, 그러려면 우리도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한다. 빈 포도주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작은 노력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 기적의 도구가 됐듯이, 낙태반대 서명용지를 가득 가득 채우는 노력 (적어도 30명 이상)도 모자 보건법과 형법 개정안 제135조의 폐지는 물론이요. 이 땅에 생명존중의 포도주 기적의 도구가 될 것이다. 성모님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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