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리아 수녀님께서 갖다주신 성서를 읽음과 (특히 복음서의 가장 못나고 비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그들을 감싸주시고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행적은 얼마나 큰 감동과 위로였는지 모른다) 맹인선교회 나종천 회장님의 여러 좋으신 말씀에 힘입어 끝없는 절망의 연속이었던 마음 속에 새로운 희망의 빛이 비춰드는 가운데, 여러 합병증으로 육신은 나날이 악화되어 큰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미비환자의 고질병이 살이 썩어드는 욕창으로 엉덩이 살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높은 열에 시달려야 했다. 높은 열 때문에 늘 갈증이 심했으나 물 한컵 시원하게 마셔보지 못했는데, 그것은 물이없고 먹여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대소변조차도 가릴 수 없는 몸이 된 후로는 혹시 배탈이라도 나게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수고와 폐를 끼치게 된다는 조심스런 마음에 물뿐만 아니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했다.
나종천 회장님께 교리를 듣고 통신교리도 공부하며, 또 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통하여 0.5평 침상 위의 마르고 뒤틀린 육신의 껍데기가 아닌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신 내 영혼의 참 모습을 찾아보려는 마음의 노력 속에서 다시 1년이 지나가고, 물 오른 나무가지 끝에 푸릇푸릇 연두빛 생명이 움트던 1983년 3월29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눈부신 봄햇살이 주 하느님의 축복인 듯 따사롭게 비춰드는 병실 창가의 회전침대 위에서 가톨릭 맹인선교회 나종천 회장님을 대부님으로 모시고, 못난 내게 좋으신 아버지 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신 선교회 여러분들의 축하를 받으며, 엄숙함속에『이제부터는 새로운 인간, 새로운 자세로써 당신의 자녀된 도리를 지켜 실천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열심히 살겠나이다』하느님께 굳게 맹세를 하고 반예문 신부님께「즈가리야」란 영세명으로 영세를 받게 되었다.『오, 하느님 이 못나고 미천한 죄인을 당신의 자녀로 맞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영세를 받고난 후 내 삶은 기쁨이나 행복까지는 못되었지만, 그렇다고 절망이나 좌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전처럼 모든 일을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외톨이가 아니라, 모든 일을 맡겨드리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인자하신 아버지 주 하느님과 든든한 후원자신 성모마리아께서 내 곁에 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최악의 절망」이란 정신적인 괴로움을 신앙의 힘, 하느님 은총으로 신음소리 뿐이던 병상생활에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라면 그동안 부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왔던 사고와 삶의 방식이-내 자신과 세상을 향한 저주가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한 기도로, 절망의 먹구름에 휩싸여 자살을 꿈꾸던 음울한 마음이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음미하고 경청하는 독서와 묵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태어난 소중한 삶이었기에 내게 주어진 아픈 현실 그대로를 내가 져야 할 내 몫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롭게 반복되는 0.5평 침상 위의 지루한 시간을 달래고 길들이며 다시 한 해를 보내고, 1984년을 맞이했다.
새해들어 합병증으로 방광에 결석이 생겨 또 한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아픈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내 가장 큰 걱정거리라 할 수 있는 퇴원문제로 또 한번의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빨리 갈곳을 찾아 퇴원하라는 병원측의 독촉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받아야 했으나 모든 것을 다른사람의 도움에 의존해야 살 수 있는 나에겐 퇴원을 한다해도 돌아갈 집도, 돌봐줄 가족도 없으니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 우리 인간의 삶 바로 그 자체가 끊임없이 문제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겐 왜 이토록 엄청난 문제만 주어진단 말인가!』피할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놓고나니 수면제를 복용했으나 잠도 오지 않았고, 뜬눈으로 긴긴 밤을 밝히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았으나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치료비 한푼 내지 못한 나를 그동안 치료해주신 것만으로도 염치없도록 감사한 일인데「난 모르겠으니 죽이든 살리든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고 더 이상 버틸 수 만도 없는 일이었다.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아득한 벼랑 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그 자비하심에 매달리는 것 뿐이었다.
『오, 하느님! 이 못하고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혔나이다. 자비로우신 당신의 사랑으로써 가련한 이 죄인을 당신 품안에 불러주시든지, 이 죄인의 앞길을 열어주옵소서?』오직 하늘의 뜻만을 기다리는 처절한 기도를 하늘에 올렸다. 그리고 좋으신 아버지 주 하느님께서는 가련한 이 죄인의 기도 (울부짖음) 를 들어주셨다.
처절한 기도속에서 가슴 조이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마리아 수녀회 갱생원에서 이 못나고 짐스러운 인간을 받아주시고 돌봐주시겠다는 기쁜소식이 온 것이다. 그래서 1984년 2월 24일, 33개월 동안 치료를 받던 한강성심병원에서 퇴원을 하여 마리아 수녀회 갱생원으로 오게 되었다. 마리아 수녀회 갱생원, 이 곡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그 가족들로부터 짐스러운 존재로 버림받은 사람들과 못나고 부족한 인간에게는 버티고 설 자리를 주지 않는 냉혹한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하느님의사랑 안에 모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생활하는 사랑의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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