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20여년만에 개인칼럼이 생겼다. 물론 그동안 칼럼을 안 쓴것은 아니지만 제목에 이름이 달리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좋기도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기사도 글쓰는 일로 표현할수 있다면 글쓰는 일이 점점 겁이나기 시작한 때문이다. 글쓰는 작업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글쓰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곤란한 노릇이지만 사실이다.
또다른 이유를 굳이 만들어 붙이자면 그동안은 베트남 다녀온 취재기를 정리하느라 다른일에 정신을 나누어줄만한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저런 사정으로 손을 놓고 있자하니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가 참으로 요상하다. 정치는「공백상태」요 경제는「혼수상태」에 빠진격이다. 그러니 사회가 제 걸음을 걸을리가 없다. 꼭 술에 만취한 나라꼴이다.
일간지도 아닌 특수지가 나팔을 분다한들 돌아오는 것은 콧방귀밖에 없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교회밖은 물론 교회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내린 결론이 그렇다. 떠들어봤자 별 볼일이 없음이 확실하지만 입다물고 있으려니 울화병이 도질것만 같다. 울화병을 잡재우기 위해서라도 소리한번 질러야만 할것이다. 비록 모기만한 소리라할지라도…
하기사 요즈음은 일반 매스컴이 돌아가며 두들겨도 요지부동이다. 일반 매스컴만 타면 겁을 먹는것은 당연지사인데 우리 정치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매스컴의 파워가 별볼일 없어졌는지 아니면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아버렸는지 그것을 모를 일이다.
주인없는 정치가 계속되다보니 행정 역시 무궤도 전차다. 대형 사기사건이 날벼락처럼 뒤통수를 내려치더니 뒤를 이어 곳곳의 다리가 무너져내려 버렸다. 뒷 배경이 전혀없다는 사기꾼 몇사람이 나라를 말아먹으려는 시도가 가능한 나라, 관계당국의 감독을 받아 건설중인 다리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수 있는나라, 모두가 술에 취하지 않고는 정말 이럴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 모두가 술취한 나라가 만들어 내고 있는 사회적 병리 현상의 대표적 사건들이지만 아무래도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 가운데 제1등은「10월 종말론」인것 같다. 다가오는 10월이면 이 세상이 끝장난다는 10월 시한부종말론은 비틀거리는 우리사회가 내면으로 부터 곪고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정직이 무시되며 질서와 정도가 증발해 버린 나라에서 나타날수 밖에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라 치부하기엔 사안이 너무나 중증이다.
시한부 종말론에 삶을 맡긴 많은 사람들의 어두운 사례는 마치 우리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닿아 있는 징표같아 불안하기 짝이없다.「유부녀들의 가출」「젊은 직장인들의 직장포기」「청소년들의 학업중단」심지어「잉태된 태아를 없애버리는 행위」가 심심치않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의 정도를 넘어서게 한다.
연일 발생하는 사건, 엄청난 사회문제속에서도 10월 시한부 종말론의 무자비한 파급사태는 종교적 측면에서 긴급사태라 하지 않을수가 없다. 사회의 빈구석을 찾아 독버섯처럼 피어나며 무기력해진 인간의 영혼속에 파고들어 파면시키고 있는 이 무서운 전염병앞에 사회와 교회는 속수무책이다. 더더군다나 10월 종말론 추종자들은 최근 가톨릭교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나서고 있는데도 말이다.
부산과 대구에 이어 서울지역 신자들 사이에서 발견되고 있는 종말론 관련 유인물들이 한결같이 89년 서울세계성체대회 마크를 그린 봉투속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사안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서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비교적 약한 가톨릭 신자들, 그리고 신앙적 유대나 결속이 비교적 탄탄한 가톨릭교회 신자들을 파고드는 무기의 하나로 성체대회 마크가 사용되고 있다는 말씀이다.
물론 10월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정한 시간, 10월28일이 지나고 나면 저절로 해결이 될수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문제를 노출시킬수록 오히려 신자들에게 선전이라는 역효과를 줄수 있다는 점에서 무시하는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시와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시급히 깨달아야만 할것같다.
그들이 주장하는 종말, 휴거나 일어나지않을때 발생될수있는 역현상들을 먼저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비 상식적 행위들을 통해 이미 그 위험성은 예고가 되고 있다. 그보다는 정상궤도를 이탈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병폐속에서 종말론 범람을 막을수 있는 아무런 힘도 발견할수 없다는 것이 적절한 이유가 될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신앙의 순수함을 교회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일수 밖에 없다. 어쩌면 그 노력은 당연히 교회의 몫이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막강한 힘로서 교세를 보유한 기성교회로서 사회의 그늘과 병폐를 키운 책임을 일부나마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마치 벼랑끝을 걷고있는듯한 이 술취한 사회속에서 교회가 먼저 깨어나야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망할놈의 10월 종말론이 선의의 사람들을 더이상 나락속으로 끌어내리지 않도록 깨어 지켜야만 한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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