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공개 (1987년 9월 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민주 언론운동 협의회 공동 기자회견) 했던「보도지침」의 실상은 국내외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었다. 이 자료집은 1985년 10월19일부터 1986년 8월8일까지 약 10개월간 문공부 홍보정책실에서 각 신문사로 거의 매일같이 내려 보냈던 보도통제 지시들을 정리한 것이었다. 이 보도지침은 권력과 언론이야합할 때, 얼마나 엄청난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 있으며, 국민을 기만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실증이었다.
이 보도지침엔『김수환 추기경 강론 관계는 1단으로 취급바람, 내용중에서「개헌은 빠를수록 좋다」는 것은 삭제하기 바람』(1986, 3, 10)『노태우 대표 회견 곡 1면 톱기사로 쓸것, 컷에는 88년후까지 정쟁지양, 88올림픽 거국지원 협의 등으로 크게 뽑을 것』(1986, 1, 22). 『대통령 기상 회견에 대한 스케치기사에서 기내 임시 직무실에「다산의 목민심서가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는 식으로 뽑을 것』(1986, 4, 19). 『김대중 사진이나 단독회견 불가』(1986, 5, 28) 그 밖에도『농촌 파멸 직접 보도하지 말 것』.『고문기사 일체 보도하지 말 것』.『KBS시청료 거부 보도하지 말 것』.『광주사태 유가족 인터뷰 싣지 말 것』.『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부천서 사건으로 쓸 것』등등이 있었다.
이처럼 언론통제본부라 할 수 있는 문공부 홍보정책실은 보도 지침에서 오직 권력에 불리한 사건이나 사태는 널리 알려지는 것을 막는데 혈안이 되어 모든 주요 사건 보도에 있어서 可ㆍ不可ㆍ絶封不可의 판정을 내리고, 보도의 방향ㆍ내용ㆍ기사의 크기ㆍ위치 등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지시하였다.
7월 11일 손주환 공보처 장관은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대 정외과 교우회 주최 「한국의 사회 변화와 언론의 사명」이란 제목의 강연에서『지금은 정부와 언론이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닌 국정의 책임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새롭게 이해ㆍ협력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할 때』라면서『오늘의 언론은 하나의 통치기구 성격을 지니며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 우위의 시대에는 갈등과 대립이 존재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만큼 국정을 이끌어가는 동반자로서 비판할 것은 비판해 맡은바 책임을 다해야 할것』이라고 했단다. (92, 7, 12 한겨레신문 보도)
언론이 통치기구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 손장관의 이러한 언론관은, 통치기구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기본 사명으로 하는 언론의 역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도 과거에 언론인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권력 기관에 들어가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이 그런 위상이라는 말인지, 과거 보도지침의 망상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국민이 정부를 선택한다는 점과 국민의 의사가 대리자를 통해서 국정에 반영되는 점이라 할수 있다. 국민이 정부를 선택한다는 점은 정부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어떤 사람들이 국민이 원하는 바를 잘 해나갈 수 있을까를 알아야 하는 것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대리자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되는 문제 또한 무엇이 중요한 우리의 과제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민주주의의 이 두 가지 성격을 보더라도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중요한 관심사를 제대로 알려줌으로써 의견을 형성하는 언론의 중요성은 참으로 크다. 현대 세계에 있어서 여론은 언론으로 나타나며, 여론을 보도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이라면, 언론의 자유와 보장은 절대적 요건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언론은 독립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독립성 유지를 위해서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함은 물론 여러 사회집단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정치 권력과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재벌과의 유착 관계에서 오는 독립성의 상실이 현재 우리나라 언론이 당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임을 감안할 때 참으로 착잡하고 안타깝다. 둘째로 자유로운 언론은 공평해야 한다. 공평이란 양쪽 의견을 모두 제시해 줌으로써 국민이 스스로 어느 것이 옳은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언론의 공명성 여부는 매우 중차대하다. 우리나라는 공영 방송의 체제이지만, 공명성의 문제를 주지시킬 법적인 제약이 없기에, 방송이 정부 당국의 의사에 따라 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다. 셋째로 자유 언론은 정확해야 한다. 흔히 생각되는 오식 (誤植) 등의 비의도적인 부정확성은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지만, 의도적으로 오도하여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키거나 양비론적으로 이끌어 나갈 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넷째로 자유로운 언론은 진실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도해야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어떤 정책을 알리는데만 그쳐서는 안되고, 그것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다섯째로 자유로운 언론은 그 사회의 목표와 가치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어야한다.
이상 몇가지 자유 언론의 보장에 대해서 살펴보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의 위상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다. 어서 빨리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 나라의 민주화가 꽃피었으면 하는 간절할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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