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신문지상을 통해 흔히 듣는 것이 GNP라는 단어다 우리나라의 GNP가 얼마인데 얼마까지 성장하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고 어느 나라는 GNP가 얼마밖에 안되는데 우리는 GNP가 얼마까지 상승, 세계속의 한국으로 부상 운운하는 기사나 아나운서의 열띤 목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 그런데 그토록 흔히 듣는 GNP의 수치인데도 내 머리속에는 그 숫자가 우주속으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이 현재 몇억만 마일을 달리고 있고, 몇억만 마일을 달리면 다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숫자만큼이나 생소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경제수치에 무관심한가 자책하면서도 GNP에 대한 관심은 내나이 20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뜻밖의 곳에서 나는 GNP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터키」라는 나라.
비잔틴 문화를 꽃피웠고 오스만 터키의 영광을 한껏 누렸던 나라. 항상 나에게는 신비의 나라로 와닿던 터키로 24일간의 성지순례를 떠나게 된 것이다.
막연한 기대와 미지의 나라에 대한 기대가 나로 하여금 터키에 대해 무한한 상상을 하게 했다. 기후와 풍토는 제쳐놓고라도 그곳의 음식은? 그곳의 주택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은?등등 가장 보편적이고 주부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궁금증을 지닌 채 순례길에 오르기 전 일행과의 1차 모임에서 가이드로부터 터키에 대한 1차정보를 들었다.
터키의 땅덩이는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것의 4배 정도이고 흑해와 에게해, 지중해를 3면에 접하고 있는 방대한 나라지만 그 나라의 GNP는 우리나라 GNP 6천5백 달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천6백 달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가이드의 터키 정보를 들으며 우선 내가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낮은 나라 그러니 우리의 60년대나 70년대의 생활수준일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활수준이 낮으면 어떻고 높으면 어떠랴. 나는 지금 터키라는 나라로 그리고 천년간의 문화의 꽃을 피웠던 비잔틴 문화속으로, 그보다 더 사도 바울로가 일생을 통해 전도를 하며 7교회를 세워 그곳 교우들을 목숨 다해 사랑했던 고장으로 떠나는 것이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발을 땅위에 내려놓은 터키의 인상은 나를 너무나 감동시켰다. GNP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생활수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느릿한 걸음거리에 까맣고 큰 다정한 눈빛의 터키 사람들. 그리고 지나가는 아무에게나「호레 귤레 (Gule gule)」하며 손을 흔드는 터키의 귀여운 어린이들.
나는 그들의 웃음과 몸짓에서 인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불행한 얘기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의 어린이들에게서 인간 냄새를 잃어버렸다. 너무 똑똑하고 너무 영악해진 우리 아이들의 눈망울에서 섬뜩한 내일을 보기도 한다.
이것도 GNP의 상승과 관계가 있는 걸까.
엄마 치마쪽에 온몸을 숨기고 눈만 빠금 내놓은 채 이국에서 온 통통하고 코가 납짝하고 눈이 쪽 째진 아줌마들과 아저씨들이 부끄러워 수줍은 듯 미소짓는 터키의 어린이들 그 아이들을 치마폭에 싸안고 자랑스레 아이들을 내보이려고 애쓰는 터키 엄마의 구수한 냄새, 그들에게서 나는 내 어린시절의 동네 모퉁이를 찾은듯 했다.
GNP가 얼마가 되든 상관없이 내가 어릴때 말던 엄마의 구수한 냄새와 수줌음으로 눈망울이 커지던 어린아이들이 이골목 저골목에서 뛰어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내가 잘못일까? 다정하게 머리쓸어 주는 어른에게「아저씨, 나 유괴하려고 그러시죠」라는 눈 딱 부릅뜨고 따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GNP의 숫자와 함께 겹쳐 보이는 건 내 상상의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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