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둘도 없는 귀중한 존재이다. 그러면서 모든것 중의 하나이다. 모든 것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우주 삼라만상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모든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 그리고 정신적이고 감성적인 것이 포함된다. 또한 모든 것에는 좋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과 온갖 추악하고 거짓되고 천한 것이 내포되기도 한다. 모든 것 속에는 꿈과 현실과 환희와 환멸도 들어 있다. 이들중 어느것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사회는 아름답고 살기좋고 행복할 수도 있고, 역겹고 짜증스럽고 불행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을 보면 그 중심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요소가 가득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그렇다고들 떠들썩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카오스나 종말론적 세상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성이 지니게 마련인 무질서와 허식과 불성실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데에서 비롯되는 관념상의 카오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것은 아담과 이브가 하던 변명과도 상통하는『나는 아니다』하는 조건반사적 자기면책 (免責) 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본래 착하고 성실한것은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좋은 것들이 없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대지와도 같다. 사람들은 숨이 막힐때 맑은 공기를 갈구하고, 어두울때 해돋이를 고대한다. 그와같이 이제 우리네 사회도 새삼 좋은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보라 저 바르셀로나의 창공에 해빛을 받으면서 나부끼는 태극기를.
모든것 중에서도 좋은 것만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빛이 지탱되기 위해서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질서란 바르고 곧고 깨끗한 것, 다시말해서 정직함의 변신이다. 사회가 온통 병들어 밑바닥까지 깡그리 망가져 흔들리고 이제라도 곧 주저앉을 것만같이 느껴지는 현실을 보면서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만 뜨면 사회가 폭삭 무너져가는 것을 걱정하면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요즈음이다. 마치 무당의 칼춤을 지켜보는 것 같아 몸서리가 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 한사람의 의인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인이나 열심히 사람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네 삶은 이리도 어수선한가.
근세의 선진국들이 급속한 현대화과정에서 거의 예외없이 겪었던 것이 민족노이로제 (Ra-ssenneurose) 이다.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사회상황도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한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되는 흥역이다. 사회진화에서는 약효가 뚜렷이 보장된 예방주사란 없는 법이다. 마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거쳐야만 어른이 되는것 같이. 다만 그러한 과정이 너무도 길고 그 과정자체가 좌절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어지럽게 펼쳐지는 사회적 모순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비관적으로 치부한다면 악순환이 시작될수 밖에 없다. 벌써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홍역에 부스럼이 가시고 딱지가 떨어져 하얀 살결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 차분할 때가 된것이다. 끝도 가도없이 걱정만하고 허구한 날을 불난집에 갇힌 사람들처럼 덤벼서는 안될 일이다.
이제 모든 것이 너무도 분명해졌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의 나로 돌아올때가 되었다.「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이르지 않았던가. 가장 쉬운 일부터 하나씩 정리해나가기로 하자. 그러면 얼마안가 이 카오스아닌 카오스는 수습이 된다. 음식먹은 뒷자리 깨끗이 치우고 화장실 깨끗이 청소하기, 교통질서 지키고 줄 잘 서기, 담배꽁초 안 버리고 씹은 껌 아무데나 뱉지 말기 등등 고쳐야 할 일이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하나씩 고쳐나갈때 사람의 수만큼이나 빨리 말끔해진다. 자질구레한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생활의 전체이기도 하며 모든것이기도 하다. 아닌말로 나쁜짓하는 사람 일일이 추려내 벌을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무심결에 되풀이하는 낡은 궂은 습관, 나도 모르게 둘러대는 버릇,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심보 이런것들을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남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나까지 덩달아 구덩이에 뛰어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이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는 저렇고 아무게는 이렇고 하는 일이 나 스스로를 타이르고 채찍하기 위해서라면 모르되, 남만 나무래 보았자 사회를 살기 좋게 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찌 내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만 이리도 크게 보이는지.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김용백신부님, 이계창신부님, 김을영교수님, 한상갑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박용휘씨 (가톨릭의대 교수) 김영대씨 (광주 가톨릭센타 신협 이사장) 이원복씨 (청주박물관장) 김윤근 신부 (부산교구 울산본당 주임) 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