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 기업, 언론 등에서「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정부는 국제화와 세계화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개념 정립과 구체적인 추진 전략을 짜느라고 부산하다. 원래 국제화라는 용어는 기업에서 시작됐다. 기업이 국내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을 대상으로 상품과 용역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것이 국제화의 첫 단계인 것이다. 그러다가 자회사 형태로 해외 현지에서 자사제품을 판매하는 판매회사를 세우거나 부품 하청공장 또는 조립 가공 공장을 단독 또는 합작투자 형태로 운영하게 되면서 기업의 다국적화가 시작되었다. 그 뒤 기업이 본사를 가장 경제적 이득이 높은 다른 나라로 옮기기도 하고 해외 현지에서 독자적인 경영을 하면서 국가의 개념을 초월한 현지화 또는 지구촌화로 발전하였다. 이 단계에서 기업들은 그야말로 국경이 없는 세계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영의 세계화를 실천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글로발리제이션(Globalization), 즉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세계화란 크게는 국제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굳이 구분 짓는다면 국제화는 어디까지나 국가라는 것을 전체로 한 국가간 경쟁이 핵심이 되겠지만 세계화 단계에 이르면 국경이 없는한 지구 가족으로서의 상호력이 핵심이 되는 상위 개념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있어서 세계화란 먼저 국제화로 국가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것이 될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선진국이 되는 것이 바로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화냐 세계화냐를 가지고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쉽게 말하면 과제는 어떻게 선진국이 되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소위「압축성장」이라고 할 만큼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이러한 성장을 위해 우리 모두가 열심히 뛰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원동력의 뒤에는 배 고픔을 이기고 잘 살아보자는「헝그리」(Hungry)정신 때문이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급속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전시행정과 졸속행정이 뒤따랐고 대충대충해 가는 눈 가림식 적당주의와 부실과 무리가 암묵적으로 통했다. 이제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기 시작하고 있다. 성수대교의 참사와 거의 전국 규모의 세금도둑현상은 성장의 그늘에 감추어진 우리 사회의 윤리 부재와 도덕성의 상실을 단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보고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다느니 용에서 지렁이로 전락했다느니 하면서 비아냥거려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에서 겨우 벗어나 선진국으로 향하려는 한 고비에서 이렇게 심한 무력증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에 건전한 가치관과 윤리의 부재에 있다고 하겠다.
사실 우리가 배 고픔을 면하기 위해 단기간의 고도성장은 가능할 수 있었으나 건전한 윤리와 정신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것은 사상누각과 같은 허망할 것일 뿐이다. 서구 선진국들이 2백여 년간 지속적이 성장을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 베버 교수는 거기에는 검소, 근면, 정직이 바탕이 되는 청교도적 윤리가 정신적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이론에 대해서 시라큐스대학의 마이클 노바 교수는 그의 최신 저서「가톨릭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정신을 북미의 칼빈주의자들을 윤리로만 너무 좁게 한정한 것을 비판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 대하여 오랜 유대나 북유럽의 가톨릭 윤리와 문화도 자본주의의 성공을 촉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명치유신 이후 지금까지 1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장을 계속하여 동양권에서는 유일하게 금세기에 선진국권에 진압하게 된 것은 겸손, 근면, 검소한 가치관과 충과 화의 정신으로 대변되는 일본인들의 경제 윤리가 그만큼 건조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유교사상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하버드대학의 투 웨이밍 교수는 일본의 이러한 경쟁적 성공을 보고 동양 전래의 유교 윤리와 서양의 청교도 윤리가 결합한「신 유교윤리」에 있다고 보지만 세계화된 자본주의 정신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한 오늘의 일본이 부분적으로 성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주목해 볼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의 한계를 드러낸 이상 좀더 세계화된 그리고 보편적인 자본주의 정신과 윤리로서 가톨릭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우리의 윤리로 소화 발전시켰으면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베버가 지적했듯이 지배자들에게 기여하는「세습적인 자본주의」에서 공정하고 공개적인 질서에서 기여하는「합리적인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할 단계에 와 있다. 우리 가톨릭은 훌륭한 윤리를 가지고 30세의 회축「노동헌장」에 이어 그 1백년 후인 1991년 5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100주년」을 발표할 때까지 우리를 가르쳐온 여러 회칙들의 사회사상을 통하여「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 즉 인간이 지금까지 만든 제도 중 다른 어느 것보다 나은 자본주의 제도의 발전에 가톨릭 윤리는 프로케스탄트 윤리를 뛰어넘는 보다 보편적인 윤리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 한국의 각계각층에서 일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만이라도 우리의 이 소중한 가톨릭 윤리의 가르침을 체질화하여 한국 자본주의를 세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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