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에 게재되는 내 글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9회 분까지는 그럭저럭 원고를 메꾸어 나갔는데 10회째가 되자 소재가 바닥 났다.
글 쓸거리는 없는데 원고마감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니 자나 깨나 원고 걱정이 되고 여간 조바심이 나는게 아니었다.
그런데「窮則通」이라, 궁하면 통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문뜩 떠올랐다.그것은 모종의 음모였다.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큰 방으로 돌아온 나는 다짜고짜로 아내에게 지금부터 부부싸움을 한바탕 하자고 제의했다. 뜻하지 아니한 나의 제의에 아내는 어리둥절 깜짝 놀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아내의 말인즉, 부부싸움이란 서로의 감정이 격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거늘 상호합의하에 시작하는 부부싸움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었다. 맞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얘기거리를 만들어 마지막 회 분을 써야하는 나의 절박한 처지를 어이 하라.
나는 내가 처한 곤경을 아내에게 설명하고 애절하게 아내의 협조를 구했다. 드디어 아내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당신, 결혼생활 20년이 지나도록 나한테 해준 것 뭐 있수? 남들처럼 보석반지 해달라 합디까. 금목걸이 사달라고 합디까? 그런것은 고사하고 그 흔한 외식 한번 시켜주었고, 여행한번 시켜주었소. 응?』
아내가 의외로 내 약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여기서 기가 꺾이면 끝까지 수세에 몰리는 법.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해야지. 나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아내의 약점을 찌르며 반격에 나섰다.
『그래 말 한 번 잘 하는군. 이봐! 당신은 펑크난 내 양말 한번 기워준일 있어. 와이셔츠 단추 하나 달아준적 있어? 입이 있으면 말해봐!』
『있어요!』『없어!』『있어요!』『없어 ,없어, 없단 말이야!』
아내와 나의 목소리가「피아니시모」에서「포르테시모」로 바뀌어갔다. 글 쓸 소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가짜 부부싸움이 진짜 부부싸움보다 더 격렬해졌다. 평소 이성의 장막뒤에 가리워진 얘기들이 흥분된 감정의 격랑을 타고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가짜 부부싸움이 고조되어 가는데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 싸움을 말렸다.
『아버지 어머니 왜 이러세요? 자식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아무리 가짜 부부싸움이라 해도 부모의 체면이 말이 아니였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다하고나니 속이 후련하고 시원했다.
아이들이 큰 방을 나간지 한참 후 우리부부는 어색해진 표정을 펴고 보통 때보다 세배나 센 힘으로 오분 동안이나 긴 포옹을 했다. 내 목을 감은 아내의 팔에도 유달리 힘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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