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할 자랑거리가 없는 내게도 남들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일이 한가지 있다. 시력이야기다. 기회있을 때마다 나는 1 · 5를 유지하는 내 시력을 자랑삼기를 즐긴다. 거기다 아직은 팔꿈치를 쭉펴서 책을 읽지 않아도 될만큼 내눈은 건강하다.
그런데 그 좋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내 눈은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눈썰이가 빵점에 가깝다.
특히 사람눈이 어두워서 한두번 만난 사람을 제대로 기억해내는 일이 여간 힘들지않다.
재빨리 알아 채지 못하고 인사를 놓쳐 상대로부터 흠잡히기 일쑤고 대충 짚어 아는체하다 엉뚱한 실수도 곧잘 한다.
그러니 가능하면 사람만나기를 피하고 아예 눈을 아래로 뜨고 다니거나 건성으로 지나쳐버려 영락없이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거듭하곤 한다.
이런일이 있었다. 길저쪽에서 오는 분이 분명 신부님이셨다.『안녕하셨습니까 신부님』반갑게 인사는 했는데 누구신지 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쯤에서 끝났으면 좋았을걸 괜히 아는체하다 들통나버렸다. 『대구 외출나오셨네요』 『저 대구있는데요』아차하는 순간 머릿속은 실뭉치처럼 헝클어졌다. 『아참 교구청에
가셨지요』 『아니 대학입니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지만 내꼴이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겨우 두달전 본당을 떠나신 신부님이 헷갈리다니….
그 사건 (?) 이후 나는 도무지 내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작 믿을수 없는건 내눈이 아니라 내 지각 (知覺) 이었다.
솔직히 나는 내 형편없는 눈썰미를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믿었으며 그 때문에 잦은 낭패를 겪으면서도 맘먹고 고쳐보겠다고 애쓴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내 눈썰미 없음은 이를 테면 대상을 분별하는 순간적인 재치가 부족한 이상으로,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일에 크게 서툴렀거나 인식능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늦게나마 인정해야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며 그것들은 과연 모두 사실 그대로 였을까. 대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진실을 판단하는 일에 미숙했던 내 정신의 눈썰미로 얼마나 많은 착각속에서 주변사람들을 괴롭혔을가. 어두운 안경뒤에서 진실을 외면하고 초점이 맞지않는 안경을 쓴채 쉽게 좌절하고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먼곳의 허망한 꿈을 쫓아 눈앞의 절박한 아픔들을 외면했을 것이고 한쪽눈을 가린채 초점 잃은 시선으로 쓰잘데없이 시선을 분산시키느라 응시해야 할 양심의 소리에도 둔감했을 것이다.
다행히 지난 몇일간 나는 난생처음 눈병을 앓았다. 불편이 여간 아니었지만 덕분에 휴가를 얻었고 두리번거리던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긴 시간 눈을 감고 있을수 있어 좋았다.
또 눈감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병든 눈이 낫듯이 나는 또 다른 내면의 눈을 되찾을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의 어리석음에 눈감는 연습을 하려 애썼고 보이지않는 것을 볼수 있는 시력 회복의 희망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 눈을 감으면 보이지않는 곳으로부터 우리 시선을 이끄는 빛이 더 밝게 비칠것이라는 믿음의 눈도 조금은 뜰수 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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