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봉중인 이문열 원작 박종원연출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빛바랜앨범 한켠에서 잠자고 있는 해방세대의 자화상을 리얼하게 재현, 뭉클한 감회에 젖게하는 영화다. 6·25전쟁의 상흔속에서 향학열을 불태우던 까까머리 코흘리개,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속에서 40대 안팎의 관객들은 까마득히 잊었던, 옛날의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사실 우리는 앞만보고 정신없이 뛰면서 살아왔고, 그 결과 물질적인 고생에서는 벗어 났지만 무언가 한 부분을 잃은것 같은 공허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박종원 감독의 이 영화를 보는 순간, 「그래 저것이 나의 본모습이었고 뿌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친다.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영웅」은 분명 「우리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우화적으로 풍자한」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그러나 관객은 이런 주제의식보다는 우선 과거의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동심에 빠져든다.
광목으로된 검은 제복, 검정고무신, 허리에 둘러맨 책보, 양은도시락, 기계충으로 부스럼난 까까머리, 말라비틀어진 콧물… 암울하고 가난했지만,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몰래 극장구경 가고 변소청소하고 도시락까
먹고 시험보고 컨닝하던 그때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때마다 중년이나 젊은 관객 가릴것 없이 같이 따라 웃고 뭉클뭉클한 추억에 전율한다. 아마도 이런 공감은 「학교」라는 똑 같은 공동체의 경험에서 연유된 것이리라.
혹자는 머리를 쳐박은 두 아이의 스틸사진이 들어있는 신문광고나 포스터를 보고 딱딱한 교육영화거나 하이틴영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면 재미도있고 메시지도 강한 근래의 수작이라는데 반대할 관객은 많지 않으리라고 본다.
어린시절 누구나 겪었던 흔한 에피소드 몇개로 이런 강한 주제의식과 감동을 자아내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원작의 탄탄한 문학성을 꼽을수 있고, 둘째는 30대 중반인 박종원 감독이 연출해낸 소름돋을 정도의 리얼리티, 그리고 연기같지 않게 자연스럽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 아역들의 집단 앙상블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주인공 엄석대역을 맡은 중 3짜리 홍경민의 강한 눈빛과 카리스마적 인상, 한병태역의 고정일이 보인 똑똑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무엇보다 천치같으면서도 가장 때묻지않은 영팔역의 정진강이 보여준 연기는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여기에 병태의 성인역을 맡은 태민영, 우유부단한 노교사역의 신구, 구악을 과감히 척결하는 젊은교사역의 최민식 역시 제몫을 다하고있다.
영화는 어느 시골국민학교 5학년2반이 무대다. 이 교실에서 엄석대는 온갖 비리와 폭력을 동원, 권력을 행사하는 이 학교의 우상이다 학생과 학생의 수평적 구조를, 지배와 굴종의 수직적 질서로 바꿔놓으므로써 대다수 학생들은 독재의 그늘에서 꼭두각시처럼 되어간다. 그러나 마침내 신임 김선생(최민식)에 의해 우상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만다는 줄거리.
여기서 5학년2반이란 교실은 우리가 겪은 정치상황이자 사회의 축도라고 할만하다.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독재와 권력의 타락, 민중의 굴종을 아프게 그려내는 한편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상황속에 개인에 대한 무력감을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원작에서와 달리 영화에서의 라스트는 기다리던 엄석대가 끝내 오지않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원작의 대안없는 결말, 영화에서의 암울한 종말은 모두가 「신의 부재」를 암시하듯 비관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서 관객이 진정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건 인간의 구원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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