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 출연한 어떤 분이 자기집 가훈을 소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세 가지로 기억 되는데 하나는「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둘은 「횡단보도만 건너자」 마지막은「쓰레기는 집으로 가져오자」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관점에 따라서는 내용이 별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가훈으로서의 격이 다소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가정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가훈들은 대개「인내」「근면」「정직」「신의」「성실」등 그 용어들이 격이 있고 무게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곧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작은 일인데 반해 후자는 추상적이고 그 범위가 무한히 넓어 보인다.
또 다른 점은 전자의 가훈이 자기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하는데 비해 전통적인 가훈들은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곧 전자의 것이 이타적이라면 후자는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전자가 실용주의적인 민주주의 사회질서 안에서 지켜져야 할 내용이라면 후자는 여전히 유교적인 형식주의 속에서 겉치레와 체면을 벗지 못하고 있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급속한 현대화ㆍ도시화ㆍ핵가족화 등의 영향으로 가훈 자체가 아예 없는 가정들도 적지 않을 듯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교육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또 사회에서도 별로 받은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대중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옆사람과 귓속말로 얘기하고 버스나 전철ㆍ기차 어디서든 방해받지 않고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나 또 서구인들이 남의 일을 간섭ㆍ훼방하거나 침해하는 일이 없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랜 교육과 끊임없는 훈련의 결과일 것이다.
횡단보도만을 건너는 질서 지키기도 마찬가지이다. 불과 몇 발자국 더 걸으면 지킬 수 있는 횡단보도 통행도 또 조금만 참고 양보하면 지킬 수 있는 교통법규도 자기 편리ㆍ자기 욕심만 쫒다보니 지켜지지 않는다.
오늘날 가장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쓰레기는 매일 산더미처럼 쌓이는 양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쓰레기를 아무데나 마구 버려 환경오염과 파괴를 가속화 시키는 일이다. 이런 쓰레기를 밖에서 집으로 가져오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바로 남을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며 쓰레기를 잘 처리함으로써 자연을 보호하고 되살려야 할 중요한 시점에서 앞의 가훈은 큰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서울의 반포본당에서는 가정성화를 목표로 각 가정이 성서에 바탕 둔 가훈과 가족성가를 정해 매월 1일을 가정의 날로 지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기회에 전국의 모든 신자 가정들이 가훈을 새로 정하거나 갱신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가훈이 작고 구체적이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내용으로 곧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