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제의 입시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가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고 한다. 비록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해도 입시생을 둔 모든 어머니의 조마조마함은 가히 심장마비에 이르기 일보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입시뿐일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뒤에는 예외없이 밤샘 기도를 마다하지 않은 어머니가 등장하곤 한다.
자식과 가족 울타리 안에 있는 가족에 대한 헌신은 가히 종교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모성은 비록 그것이 가족 안에서만이라는 한정된 테두리를 가지고 있지만 워낙 야박하고 타산적인 사회에서 이기심을 추월하는 미덕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모성을 저버리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낙인은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그것이 제대로 사회화되지 않은 채 가족이라는 좁은 울타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때는 여성 자신은 물론 사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모성에 대한 사회의 도덕적 요구는 사회의 법과 상식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반사회적 행동을 역시 사회적으로 일종의 면책특권을 부여 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빗나간 모성은 내 아이만 잘 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식의 가족 이기주의와 사회에 대한 무책임을 양산해 낼 수 있게 된다.
내 아이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돈 봉투도 모자라서 부정 입학에까지 손을 뻗치고 교직을 천직으로 아는 선생님의 박봉을 비웃으며 그들을 안방으로 불러들여 교육자에서 지식상품 외판원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빗나간 모성의 그늘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오렌지족과 야타족이라는 정체 모를 집단으로 등장하여 사회에 대한 무책임과 방종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사회는 모성을 강조하면서도 모성의 사회화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상태이다. 국가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민 각자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논의할라 치면 으례히 집에서 놀고 있는 여성 노동력을 활용할 방안을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되는 양 제시하곤 한다.「외국인 노동자를 동원하느니 여성을…」이런 식의 발상 뒤에 여성이 일하러 나갈 때 그동안 여성이 감당해 왔던 집안 일과 아이의 양육을 누가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밖으로 일하러 다니는 여성은 내 아이가 문제아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일하러 다니는 것은 원래의 어머니 역할을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강박관념이라는 부담을 안아야 된다. 그러한 부담은 일하는 여성 자신의 일터에서의 책임을 반감시키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성에 대한 일방적인 사회적 요구는 여성을 산업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게 된다. 그것은 여성의 생각과 사고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가두게 만들고 그 결과 여성을 반사회적 존재로 만들게 된다. 사회적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 모성이 가져오는 문제점에 대해 우리는 앞에서 든 예 이외에도 얼마든지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모성이 지닌 원래의 미덕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성을 사회화하여야 한다. 모성을 사회화한다고 하면 흔히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집단농장이나 탁아소에서 자란 애정에 굶주린 아이들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경쟁과 능률을 최대의 미덕으로 여기는 살벌한 산업사회의 유일한 피난처인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막기 위해 가족이라는 대문의 빗장를 닫아 거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내 아이가 먹고 마시는 물을 지키는 쪽으로, 내 아이가 더 많은 인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교육정책과 정치적 의사 결정이 올바로 내려지는가를 감시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모성인 것이다.
모성을 사회화하려는 노력과 고민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를 모성화하는 일이다. 모성은 비록 그것이 자기 자식이라는 테두리에 한정된 것일지라도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인류 역사의 귀중한 자산이다. 모성이 참답게 꽃 피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회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 지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통해 사회에 어머니적인 포용과 관용을 부활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인간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키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피곤한 경쟁의 관계를 강조하는 산업사회에서 사람 사이에 사랑을 불어넣어 주고 상호 협조와 이해를 부활시켜 주는 것은 사회에 모성적 가치를 불어넣는 것이다. 사회에 모성을 불어넣는 책임은 모성의 담당자인 여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움직여가는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여성에게 모성을 상실하도록 부채질하는 책임도 알고 보면 그들에게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